일상의 발견

심리

불쌍하고 미운 형제

성숙한 사람은 자기 안에 좋고 나쁨이 모두 존재할 뿐만 아니라 타인 안에도 좋고 나쁨 모두가 존재함을 압니다. 사람이 좋고 나쁨을 통합하지 못하면 좋고 나쁨을 분열시킵니다. 자기 안에 좋음만 있어야 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자기 안의 나쁜 부분을 타인에게 투사해 타인을 나쁜 사람으로 만듭니다. 반면 타인에게 나쁜 부분이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나빠서 타인이 잘해주지 않는 거라 생각하며 자신을 나쁨만 존재하는 나쁜 사람으로 만듭니다. 못사는 여동생이 미운 오빠 50대 후반의 수철 씨는 못사는 막내 여동생이 밉습니다. 막내 여동생은 충분히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서 경제적으로 잘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내 여동생이 못사는 남자, 못사는 시댁에 시집을 가서 지금까지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합니다. 수철 씨는 그런 막내 여동생이 미워 여동생이 결혼한 이후 아무런 경제적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막내 여동생이 수철 씨에게 자신의 가난을 하소연하거나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수철 씨는 못사는 막내 여동생이 싫습니다. 수철 씨의 막내 여동생은 못산다고 자기를 비난하는 오빠가 밉습니다. 오빠에게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넋두리를 하지도 않았고, 도움 또한 받지 않았는데 왜 오빠가 자기를 비난하고 미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막내 여동생은 형제들을 만나면 못사는 자신이 부끄럽고 주눅이 들었지만 애써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좋고 나쁨의 분열과 통합 사람이 심리적으로 건강하려면 자기와 타인 안에 있는 좋고(good) 나쁜(bad) 부분을 통합해야 합니다. 대상관계 이론가들은 유아가 자라면서 자기를 돌보는 중요한 대상과 어떻게 심리적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하는지, 그리고 그 관계가 유아가 성인이 된 후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유아는 성장하면서 자기 안에 그리고 타인에게 좋고 나쁨이 모두 있음을 알게 되면서 자신과 타인 안에 있는 좋고 나쁨을 통합하며 성숙해간다고 말합니다. 유아가 자신과 타인 안에 있는 좋고 나쁨을 통합하지 못하면 좋고 나쁨을 분열(splitting)시킨다고 합니다. 유아가 자기 안의 나쁨을 수용하지 못하면 그 나쁨을 타인에게 투사(projection)해서 자기 안에는 좋은 부분만 있고 자기 안의 나쁜 부분은 타인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런 유아는 성인이 되면 자기애적(narcissistic) 경향의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자기애적 경향의 사람들은 자기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잘못은 모두 다른 사람이 저지른 실수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타인을 비난합니다. 자기 안의 나쁜 부분을 인정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약한 것이지요. 반대로 유아가 자기를 돌보는 중요한 대상에게 나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수용하지 못하면 중요한 대상은 좋은 부분만 있는 좋은 사람인데 자기가 나빠서 자기를 돌보는 중요한 대상이 자기에게 잘해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자기 안에 좋음은 없고 나쁨만 있는 나쁜 사람이라고 자신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런 유아는 성인이 되면 경계선적(borderline) 경향의 사람이 됩니다. 자신과 타인 안에 있는 좋고 나쁨을 통합해야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지요. 좋은 사람이고만 싶은 나 수철 씨가 막내 여동생이 미운 이유는 수철 씨의 내면이 좋고 나쁨으로 분열돼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여동생을 도와주는 좋은 오빠와 여동생을 못 도와주는 나쁜 오빠로 말입니다. 수철 씨는 자기가 좋은 오빠이기도 하고 나쁜 오빠이기도 함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수철 씨는 못사는 여동생을 보면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수철 씨는 자기 식구의 가장 역할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직장이라도 든든하고 월급이라도 넉넉하면 괜찮을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자라면서 점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후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수철 씨는 자신과 자기 가족을 위한 경제적 책임감만으로도 벅찬데 못사는 여동생도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마음이 있습니다. 때때로 막내 여동생이 얼마나 어려울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도와주고 싶습니다. 여력만 있으면 도움을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여동생에게 미안하고, 자기와 자기 가족을 먼저 챙기느라 도와주지 못하는 자기를 나쁜 오빠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수철 씨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러한 나쁜 오빠라는 부분을 막내 여동생에게 투사해 막내 여동생이 나쁘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나쁜 오빠인 게 아니라 막내 여동생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서 자기를 나쁜 오빠로 만들었기에 여동생이 나쁜 것입니다. 막내 여동생이 잘살면 여동생을 도와주지 않아도 돼 수철 씨는 자신이 계속 좋은 오빠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수철 씨는 여동생과의 관계에서 항상 좋은 오빠이고만 싶은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 성숙한 사람 우리에게는 좋고 나쁨이 모두 존재합니다. 모두 나쁘거나 모두 좋거나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 문화는 끈끈한 가족애를 중요시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형제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이 생깁니다. 살다 보면 여러 어려움에 봉착하거나 여력이 안 돼서, 혹은 형제보다 자기 가족을 더 위하는 마음 때문에 어려운 형제들을 도와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경제적 어려움이든 정서적 어려움이든 말입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 안의 이런 부족하고 약하고 나쁜 부분들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과 나쁜 부분들을 드러나게 하는 형제를 비난하는 대신 자신 안의 좋고 나쁨 모두를 상대 형제에게 말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수철 씨는 막내 여동생에게 자기 안의 좋은 부분, 즉 여동생에 대한 걱정, 연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그러나 도와주지 못하는 자신 안의 나쁜 부분, 즉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막내 여동생이 수철 오빠에게 듣고 싶은 말과 행동입니다. 도와주지도 않고 비난하는 대신에 말입니다.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이지요. 글 한영혜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여행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의<옥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물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 중에서 죽을 길과 살 길은 포개져 있다 1996년 정지용 생가 옆에 문을 연 정지용문학관은 정지용 문학의 실체를 보고, 느끼고,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문학전시실과 영상실, 문학교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한동안 우리에게 시인 정지용은 없었다. 그저 문학사의 한 페이지에나 ‘정○용’으로 표기되는 금기의 시인이었다. 월북작가로 분류되어 오랫동안 우리에게 잊혔던 정지용의 시편들은 30년이 지난 1988년에야 겨우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해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모임인 ‘지용회’에서는 충북 옥천군 그의 생가터에 자그마한 기념판 하나를 새겨 넣었다. 지용유적 제1호 - 명시 의 시인 정지용이 1902년 5월 15일(음력) ‘실개천’ 가의 이 자리에서 태어났다. 생가는 1974년에 허물어지고 새 집이 들어섰다. - 1988년 6월 25일, 지용회 이어 1996년 옥천군에 의해 그의 생가가 복원되고, 2005년 그 곁에 정지용문학관이 건립됨으로써 시인의 귀향은 비로소 완결을 이루었다. 그와 함께 옥천 사람들 역시 커다란 자부심 하나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옥천 구읍의 아침 풍경. 이른 아침부터 집 앞 텃밭을 가꾸는 노부부에게서 비록 풍경은 바뀌었어도 여전하기만 한 ‘향수’를 느낀다. 정지용은 옥천읍 죽향리 하계마을에서 태어났다. 흔히들 ‘구읍’이라고 부르는 죽향리는 지금도 드문드문 일본식 건물과 낡은 집들이 눈에 띄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지만,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옛 모습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생가 앞으로 여전히 실개천은 흐르지만, 그 물빛부터 예전과는 다르다. 다만 시멘트로 복개된 천변길로 간혹 몰려다니는 아이들의 가벼운 뜀박질만이 그때의 모습을 얼핏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생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죽향초등학교는 정지용이 다니던 옥천공립보통학교의 후신이다. 지금도 이 학교의 운동장 한쪽에는 그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사용되었던 교사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시인의 어린 시절을 희미하게나마 짐작게 한다. 옛 교사는 현재 교육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인 정지용은 절제된 감정과 사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 그리고 섬세한 언어감각으로 빚은 시편 등을 통해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하였다. 김기림은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까지 극찬했다. 생가 옆에 지어진 정지용문학관은 이런 정지용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고, 대표적인 작품을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하며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 장계관광지에는 정지용문학상 시비 등 시비길이 조성되어 있다. 문학관 전시실에서는 ‘지용 연보’나 ‘지용 문학지도’ 등을 통해 시인의 삶의 자취와 함께 한국 현대시의 흐름 속에서 정지용 시인이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을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손으로 느끼는 시, 영상시화, 시낭송실 등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정지용의 시세계를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이 밖에 영상실, 문학교실 등도 정지용문학관의 중요한 공간들이다. 장계관광지 가는 길에 만나는 카페 호반풍경은 대청호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해마다 5월이면 그의 생가와 문학관을 중심으로 지용제가 벌어진다. 그때쯤이면 옥천군은 말 그대로 ‘문학과 예술의 고장’이 된다. 하지만 올해 지용제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정지용생가 및 정지용문학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그때를 기다리며 키 큰 참나무들 사이로 고향마을을 그윽이 내려다보는 그의 동상 좌대에는 늘 가슴에 사무치는 한마디가 새겨져 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 100리길 여행 용암사 천불전.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마애불이 나오고, 다시 그 옆으로 난 데크길을 따라가면 일출을 조망할 수 있는 운무대에 이른다. 용암사 일출은 미국 CNN go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50곳’에 포함될 정도로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정지용의 고향마을을 ‘회돌아’ 나온 실개천은 여기저기서 모여든 작은 물줄기들과 함께 금강에 합류한다. 그리고 금강은 대청호에서 잠시 제 몸을 가둔다. 그래서 정지용 문학기행은 당연히 구읍의 생가와 문학관에서 시작, 금강을 따라 흘러간다. 아니, 금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 길은 옥천의 ‘넓은 벌’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금강 물줄기를 따라가는 ‘향수 100리길 여행’은 군북면 추소리 부소담악에서 시작한다. 본래 산이었으나 대청댐 준공으로 산의 일부가 물에 잠겨 마치 물 위에 바위가 떠 있는 듯한 형상이 되었다. 부소담악의 암봉들은 우암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예찬하였을 정도로 예부터 옥천 제일의 선경을 자랑한다. 2008년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을 대표할 만한 아름다운 하천 100곳’ 중 하나이다. 옥천의 금강은 장계에서부터 금강유원지까지 거슬러 오르는 구간에서 가장 싱그러운 강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으로 치자면 청소년기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자연뿐만 아니라 견지로 쏘가리를 낚고, 우산으로 피라미를 잡는 사람들의 풍정 또한 풋풋하기만 하다. 대청호반이 한눈에 장계관광지에는 향토전시관과 함께 작은 시비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정지용이 남긴 문향(文香)을 느낄 수 있다. 옥천읍 삼청리의 용암사는 일출명소로 유명하다. 동틀녘 용암사 운무대에 오르면 운해와 일출이 어우러진 장엄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꼭 일출이 아니더라도 운무대에서 바라보는 옥천의 그윽한 산야는 곧 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 13년(552) 창건된 천년고찰로, 고려 때 조성된 동서삼층석탑과 마애불이 있다. 현재 당우의 건축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자연과 어우러지는 산사의 전통건축미를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절집이다. 글·사진 유성문 여행작가

인터뷰

배우 김수로 – “100세 시대에 은퇴가 따로 있나요?
인생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죠

“좋은 연극을 발견해 소개할 때 마치 산삼을 찾은 것 같은 기쁨을 느껴요. 그것이 제가 연극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죠.” 배우이자 공연 제작자인 김수로(52)는 ‘열정의 아이콘’답게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 5~6월 연극 〈돌아온다〉의 배우이자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그는 SBS 드라마 〈우리는 오늘부터〉에 출연했고 현재 tvN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촬영에 한창이다. 원로배우 이순재, 백일섭, 노주현 주연의 연극 〈아트〉의 제작도 맡았다. 여기에 대학 강의까지 ‘1인 다역’을 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의 중심에는 늘 연극이 자리 잡고 있다.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출신으로 공연 제작사 더블케이 필름앤씨어터 대표이기도 한 그는 매년 빼놓지 않고 연극 무대에 오른다. 그는 “연극 무대는 좋은 에너지를 주는 고향 같은 곳”이라고 말한다. 좋은 연극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무대에서 살아 있음 느껴요 “영화든 드라마든 새로운 연기를 계속 보여주려면 무대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 중요해요. 배우로서 늘 연기 훈련을 해야 되는데, 좋은 작품만 기다리다 보면 기약이 없으니 제작도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좋은 연극을 계속 알려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어요.” 연극은 모든 문화예술의 기본이지만, 상업적인 다른 장르에 비해 다소 주목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김수로는 “국영수를 위주로 공부해도 뿌리인 국사를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처럼, 연극이 살아 숨 쉬어야 다른 예술이 더욱 꽃피울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자기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대중에게 통할 수 있는 연극을 계속 개발하고 기획하는 제작자들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극계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하고요.” 그는 2년 전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힘들다. 코로나19로 공연이 갑자기 취소돼도 대관료를 100% 다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의 발언은 대관료 지원사업이 생기는 계기가 됐고, 지난 8월부터 감염병과 천재지변 등 기타 불가항력 사유를 대관료 반환 사유로 명시한 ‘공연예술 표준대관계약서’가 도입되기도 했다. 스타들이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이유는? 김수로에게는 오늘도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는 스타들이 많이 찾아온다. 연극 〈돌아온다〉에는 배우 홍은희, 이아현, 박정철 등 TV에서 활동했던 배우들이 무대에 올랐다. 강하늘, 김선호, 박은석 등 대중적 인기를 얻어도 마치 연어처럼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스타들도 많다. “예전에는 무조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매체 연기를 선호했지만,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배우들도 트레이닝을 해야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연극은 관객의 반응을 현장에서 바로 느낄 수 있어서 무대의 진한 맛을 잊을 수 없죠.” 그는 “최근 돈보다 내실을 기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문화 선진국이 되는 것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오는 12월까지 공연되는 연극 〈아트〉는 그에게 배움의 현장 그 자체다. 원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세 남자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이순재는 고전을 좋아하는 지적인 항공 엔지니어 마크, 노주현은 예술에 관심이 많은 피부과의 세르주, 백일섭은 우유부단한 문구 영업사원 이반 역을 각각 맡았다. “세 분을 연습실에서 볼 때마다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껴요. 대사 양도 많은데, 첫 연습에서 80% 가까이 암기해 오셨더라고요. 체력 등 자기 관리를 잘하신 점도 존경스러웠어요. 레전드들이 만사 제치고 연극 무대를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에 울컥했죠.” 축구 마니아로 유명한 그에게는 영국 첼시로버스의 구단주라는 또 하나의 명함이 있다. 최근 첼시로버스는 13부 리그 우승을 차지해 12부 리그로 승격했다.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축구 감독이 되고 싶어요. 50부터는 비시즌에는 연기도 겸하면서요. 축구 감독 겸 배우, 정말 멋있지 않나요?” 좋아하는 일 하면, 인생은 '현재 진행형' 내년에 데뷔 30주년을 맞는 그는 “팬들이 행사를 준비한다고 하는데, 30주년 기념으로 좋은 연극 한편에 출연하고 싶다”면서 웃었다. 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최고의 노후 대비이자 늘 젊고 활기 있게 살아가는 비결이기도 하다. “100세 시대에 은퇴가 따로 있나요? 좋아하는 일 하면, 인생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죠. 나이가 들어도 좋은 무대에 더 많이 서고 싶은 욕심밖에는 없어요.” 성실히 모은 돈을 저축하고, 지인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조금 투자하는 것이 재테크의 전부라는 김수로. 그는 “무대를 세우고 제작하는 것이 저의 본업이자 부업”라고 말했다. 그는 “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삶의 흔적을 모으는 것 역시 중요하다”면서 “여행을 통해 추억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연예계의 소문난 ‘인맥왕’이기도 한 그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힘들 때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교회에 나가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K-콘텐츠’로서 국내 공연의 우수성을 알리고파 “영화 〈로맨틱 헤븐〉, 〈점쟁이들〉, 드라마 〈신사의 품격〉 등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한 그에게 출연 제의가 쏟아지지만 매체는 1년에 두 작품 정도만 출연하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영국 웨스트엔드 등 해외의 좋은 라이센스 작품을 직접 보고 구매해 소개하는 등 제작자로서 바쁜 일정도 소화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는 내년에도 6~7개가량의 연극과 뮤지컬을 무대에 올린다. 일단 대중적인 뮤지컬로 수익이 발생하면 연극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의 꿈은 전 세계에 K-콘텐츠로 국내 공연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다. “K-pop, 영화, 드라마 등 K-콘텐츠의 중심부가 터졌으니 이제는 연극, 뮤지컬 등 공연계에도 자연히 관심이 쏠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해외 공연과 비교해 우리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공연 제작 역량은 절대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언어의 장벽도 자막기를 써서 뛰어넘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봐요.” 지천명을 넘어서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그의 신조는 ‘청출어람(靑出於藍)’으로 바뀌었다. “제가 대학이나 연극학교에서 학생들을 많이 가르치다 보니 이제 선배보다 나은 후배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월드 스타도 많이 탄생하고요. 우리나라가 세계를 문화 예술로 선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이은주 서울신문 기자 사진 SM C&C, 김수로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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