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발견

인터뷰

‘생명 나눔’ 솔선하는 연극배우 윤석화

청아한 목소리로 친근한 멜로디의 광고 노래를 부른 CM송 가수, 연극 ‘신의 아그네스’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화려한 수식어가 따르는 윤석화도 상처를 입고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고난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데뷔 40년을 넘긴 연극배우 윤석화를 만났다. 지난 6월 13일이다. 윤석화는 ‘윤석화의 사랑은 계속됩니다. 일곱 번째 이야기 :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설치극장 정미소’의 160석을 관객들이 가득 메웠다. 6일 동안 열린 올해 자선 공연에는 연극계의 큰언니 박정자를 비롯해 윤씨가 아끼는 후배인 뮤지컬 배우 최정원·전수경·박상원·송일국·이종혁·배해선·박건형·카이·윤공주·김현수 등이 초대 손님으로 나와 ‘생명 나눔’ 뜻에 동참했다. 이들은 “무엇이든 꾸준히 오래 지속한다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이지만 나눌수록 행복하다”는 윤씨를 응원하기 위해 기꺼이 게스트로 참여하고 바자회 경매 행사도 진행했다. 이렇게 얻은 수익금 전액은 동방사회복지회와 애란원에 기부했다. CM송 부르다 우연찮게 연극 데뷔 윤씨는 1남 6녀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작고 깡마른 체구였던 그는 노래 잘 부르고 명랑 쾌활한 성격이었다. 언니들과 함께 놀던 유년 시절, 그의 집 꽃밭에는 장미·월계·채송화·양귀비·맨드라미·나무딸기·감나무·밤나무·등나무·포도나무·라일락·목련 등 철마다 온갖 나무와 꽃이 형형색색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그 꽃밭을 보고 자라며 꾸었던 최초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사춘기가 되자 친구들은 ‘가수가 되라’ ‘선생님이 되라’ ‘소설가가 되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그래도 꿈은 한결같이 ‘현모양처’였다. 왜? “울 엄마처럼 형형색색의 꽃들 같은 아이를 낳아 행복한 엄마가 되고 싶었지요.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로 연극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연극배우가 됐습니다.” 학생 때 합창반 활동을 한 윤씨는 고교 졸업 후 한 조미료 회사의 로고송을 부른것이 계기가 돼 이후 각종 CM송(광고방송용 노래)을 섭렵했다. 대한민국 최고 인기 CM송 1위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윤씨다. 그렇게 광고회사를 드나들다가 사무실 옆에 있던 민중극단에 놀러 갔고, 거기서 연출가 정진수 씨를 만나 연극 ‘꿀맛’에 첫 등장했다. 그때가 1975년, 그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윤씨는 이후 ‘신의 아그네스’ ‘덕혜옹주’ ‘딸에게 보내는 편지’ 와 뮤지컬 ‘명성황후’ ‘아가씨와 건달들’ ‘사의찬미’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국내 대표적인 연극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미혼모 자립 위해 자선 콘서트 꾸준히 열어 연극배우로 20년이 되던 1994년 5월 16일, 윤씨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현모양처’의 꿈을 이루었다. 자연스레 2세에 대한 소망을 지녔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시들어버린 붉은 꽃을 버리며, 가슴에는 차마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던 강물들이 흘러넘쳐 텅 빈 방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게도 세상 모든 여자들처럼 생명을 주세요, 제발….” 윤씨는 오랜 기다림 끝에 2003년과 2007년 각각 가슴으로 낳은 아들과 딸을 품에 안았다. 그러면서 한 생명을 보듬는다는 건 여성이 해야 할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감사함을 나누고 싶어 입양기관과 미혼모 자립을 돕기 위한 자선 콘서트를 기획했다.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고, 가능한 한 외국에 입양 보내지 않고 국내에서 키우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는 미혼모를 살리면 두 생명을 살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늘 생각한다. 2003년 ‘엄마의 자장가’를 주제로 첫 자선 콘서트를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작은평화’ ‘어메이징 그레이스’ ‘엄마로 살아보니~’까지 네 번의 자선콘서트를 연 데 이어 영국 런던에서 일할 때는 현실에 맞춰 작은 음악회를 열어 명맥을 이었다. 그는 2015년 여섯 번째로 ‘사랑을 속삭이다’를 공연하면서 2년에 한 번씩 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그래서 교통사고로 갈비뼈가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고도 올해 몸이 회복되자마자 가장 먼저 할 공식 공연 일정으로 일곱 번째 자선 콘서트 ‘만남’을 기획하고 실행한 것이다. 이번 공연의 스토리는 ‘하늘’ ‘꿈’ ‘상처’ ‘벌판’ ‘인연’ ‘길’로 이어지다가 결국 나무의 뿌리와 바다 같은 자유로 막을 내린다. 제목이 콘서트이기는 하지만 드라마 기법을 섞었다. 제작비는 본인이 전부 부담하고 수익금은 매번 주최한 복지재단에 전액 기부한다. 올해 수익금은 3000만 원 정도다. 윤씨는 그렇게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힘이 생긴다고. 그럴수록 이름 없는 미혼모에게 용기를 주고 같이 살아가는 삶에 감사를 느낀다고 말한다. “오페라가 없어도 내일의 태양은 떠오르겠죠” 윤씨는 공연 무대뿐 아니라 텔레비전에도 등장해 특별한 모습으로 팬들과 만났다.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중종의 첫 부인이자 사임당의 조력자 격인 단경왕후를 연기했다. 또 MBC 예능 프로그램인 ‘일밤-복면가왕’에 로마의 휴일 오드리 헵번으로 출연해 반전 매력을 뽐내기도 했다. 그에게 그동안 출연한 작품 가운데 생각나는 대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다 잊어버려요, 그래야 다음 것을 소화할 수 있잖아요”라고 응답한다. 다시 웃으면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부지런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덕혜옹주’ 얘기도 나온다. “더러움은 더러울 뿐이고 그저 흘러갑니다. 견딘다는 것, 참아야 한다는 것, 맞서다 보면 다 똑같아지는 것이겠지요.” 윤씨는 지난해 연극 데뷔 40주년 기념공연으로 연극 ‘마스터클래스(연출 임영웅)’ 무대에 올랐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1923~1977)가 은퇴 뒤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실제로 진행한 마스터클래스 강의를 토대로 미국 극작가 테렌스 맥날리가 극화한 작품이다. ‘40년 기념비’로 준비한 연극 작품을 통해 그는 마리아 칼라스의 대사에서 예술의 존재 가치와 예술가로서의 용기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한다. 잠시 대사 한 토막을 떠올린다. “오페라가 없어도 내일의 태양은 떠오르겠죠. 세상은 우리 없이도 돌아갈 거예요. 하지만 우린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왔다고 생각해요. 예술이 없는 세상에 비해 훨씬 풍요롭고 현명한 세상으로 말입니다. 예술은 어렵지만 ‘저게 뭐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생각은 자기 것 이 됩니다….” 환갑 때 아들딸 ‘어메이징 그레이스’ 연주 그는 어느덧 예순 살이 넘었다. 그에게 나이란 무엇일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듯 웃는다. 아주 쿨하다.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 기쁘고 대견스럽고 담대하다는 말로 대신한다. 한 나무를 보면 그 뿌리를 생각한다. 누구라도 해야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나무가 나무답게 산다는 것을 얘기한다. 그는 지난해 연극 데뷔 40주년과 환갑을 기념해 평소 자신의 등을 토닥여주는 인사 50명을 초청해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다. 소감을 물었다. “연극배우 40년 세월이 별것 아니죠? 그래도 본분과 원칙을 지키면서 최선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임에 아들과 딸이 악기를 들고 참석했다. 아들은 클라리넷과 피아노, 딸은 첼로를 연주했다. 곡목은 ‘어메이징 그레이스’. 아이들은 음악·운동·외국어 실력을 잘 쌓았다. 모르긴 해도 윤씨는 그날 무척 아름다웠고, 정말 행복했을 것이다. 대놓고 말은 안 했겠지만 내심 기대를 했을 테니까. 그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너의 친구란다”라고만 얘기한다. 영국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특출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문화적이든 스포츠든 인정받는 학생으로 성장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삶을 보거라. 진실로 간결하여, 오히려 모든 것을 헌신할 수 있는 기쁨의 삶! 나무의 삶! 해마다 비워내고 다시 시작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나무가 나무답게 사는 것처럼….” 그가 아들과 딸한테 들려주는 말이다. 나누기를 희망하는 삶을 살다가 지칠 때는 언제나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주는 나무를 생각하라고, 나무처럼 의연하고 당당하게 커가라고 당부한단다. 아무리 많이 모여 숲을 이루어도 다투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나무처럼 어떤 비교에도 의연하라고 했다. 윤씨는 다행히도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올해 어떤 계획이 있을까. 우선 자선 콘서트를 순회 공연할 예정이다. 감사하게도 와달라는 곳이 여러군데 있다. 그래서 서울에 한정하지 않고 지방 나들이도 하면서 ‘생명 나눔’의 의미를 확산할 작정이다. 오는 11월에는 연극 한 편을 상연하고, 내년 3월께 박정자·손숙·윤석화 세 사람이 출연하는 연극 공연도 계획돼 있다. 윤씨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다시 아들딸 얘기를 꺼냈다. 운동도 잘하고 음악도 좋아하고 걱정 없이 자라줬다고 했다. 5월의 푸른 나무처럼 엄마 곁에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내내 아이들 자랑만 했네요”라며 웃어 보인다. 연극배우, 뮤지컬 연출가, 공연 제작자, 돌꽃컴퍼니 대표 등 화려한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식 자랑하는 평범한 팔불출 엄마였다. 글 김문·인터뷰 작가 | 사진 고승범·사진가 | 자료제공 전원생활

여행

한반도 속살을 보듬으며 흐르는 내촌천

지치지 않을 것같이 그악스레 울어대던 매미도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가을 척후병인 귀뚜라미에게 제자리를 내어주며 그렇게 물러갔다. 들녘의 오곡백과는 황금빛 햇살을 끌어안는 몸부림으로 분주하다. 대지의 알곡이 여물어가는 계절, 여름내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다독여줄 길을 걷고자 한반도의 속살을 적시며 흐르는 강원도 홍천군 내촌천을 찾았다. 신라 마의태자 눈물을 품고 흐르는 내촌천 내촌천을 끼고 있는 홍천군 내촌면은 은밀하다. 금속성의 날카로운 문명의 손이 아직 덜 탔다. 북한강의 제1지류인 내촌천은 화장한 얼굴이 아닌 청초한 여인의 맨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발원지 미약골로부터 시작되는 내촌천 물은 저 신라 마의 태자 전설을 품고 있는 백암산과 백우산을 품으며,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유유자적하게 흐르고 있다. 내촌면의 진산인 백우산은 마의태자가 신라의 회복을 위해 군영지를 설치한 곳으로 유명하다. 내촌천 곳곳에는 용마바위, 용마가 물을 먹던 여물통바위 등의 비경이 발길 옮겨놓는 곳마다 서려 있어 신비한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새로운 휴양지로 떠오르는 한반도의 속살 얼마 전 춘천-양양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그런데 이 고속도로가 내촌면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 덕분에 내촌면의 속살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 가을, 내촌천 강변을 따라 펼쳐진 황금빛 들녘을 바라보는 일은 풍요로움을 안겨줄 것이다. 첩첩이 둘러싸인 산등성이로 떠오르는 일출도 근사할 것이고, 하루 일을 끝내고 쉬러 들어가는 해, 그 해가 산등성이에 걸칠 즈음 옷자락을 살포시 벗으며 부끄러워 붉어지는 정경 또한 아름다울 것이다. 내촌천은 가을에 가야 제맛이다. 여름철 북적거리는 개울 천렵이나 물놀이도 좋지만, 코발트빛 하늘을 이고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들녘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정겨운 곳이 바로 내촌천이다 내촌천을 끼고 돌아 나오는 길 : 홍천-철정 교차로에서 우회전 ~ 내촌면사무소 ~ 와야삼거리 ~ 물걸리(동창리) ~ 내촌면사무소 ~ 백우산 ~ 경수골계곡 ~ 백두산휴게소 ~ 철정삼거리 ~ 홍천(서울기준 왕복 약 470㎞). ※신설 양양고속도로에서는 물걸리 IC로 빠져나옴 내촌천에서 만나는 보물 : ①물걸리사지 :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상(제542호), 대좌(제543호), 대좌 및 광배(제544호), 삼층석탑(제545호) ②수타사 : 수타사동종(제11-3호), 월인석보(제745호) 맛집 : 홍천 시내에 있는 ‘양지말 화로구이’의 돼지고기 숯불구이와, 내촌면 도관리와 인근 강변에 있는 식당에서 주로 내는 메기매운탕과 도리뱅뱅이는 내촌천 여행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다. 가을들녘을 걷는 일은 삶을 살찌우는 일 이 가을, 천천히 강변 옆 논길을 걸으며 벼메뚜기가 뛰노는 것도 보고, 꾸덕꾸덕 굳어가는 봇도랑 물길의 의미도 가슴으로 받아들여보자. 그렇게 걷다 보면 짯짯한 가을바람의 맛이 느껴질 것이다. 또한 산허리를 감싸 안고 흘러내린 안개 속 강변,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그곳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오래전 어머니가 자글자글 끓여주시던 뚝배기 된장찌개의 그리운 맛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 다음 인근에 있는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을 걸으며 그 숲의 바람소리를 듣는다면 도시 생활로 몸에 찌든 문명의 때를 씻어내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자작나무 숲이 있는 응봉산 골짜기를 흘러내린 내촌천을 따라 걷다보면 정신도 살찌울 수 있다. 강원도에서 보물이 가장 많은 물걸리 옛 절터에서, 또 공작산 자락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수타사에서 여러 보물과 문화재를 만나게 된다. 이 밖에도 내촌천 주변에는 내촌면 소재지 도관리를 중심으로 백우산 용소계곡, 백암산 가령폭포 등의 비경이 곳곳에 숨어 있다. 홍천 깊숙한 곳을 적신 내촌강은 시내를 가로지르며 서면의 금학산, 팔봉산의 명산과 어울려 비경을 만들어놓고 두루두루 돌다가, 마침내 대장정의 물길을 접고 청평에서 북한강의 본류와 한 몸이 된다. 다만 이 물길을 따라 전부를 걸을 수는 없고, 강변을 낀 지방도를 따라 드라이브하면서 중간중간 차에서 내려 걷는 것만으로도 내촌강의 속살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다. 글 이승현·시인 여행작가

건강

노화를 받아들여야 노년이 편하다

모든 것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약물로 해결하려 들면 한도 끝도 없게 된다. 노화에 적응해가는 삶도 필요한 것이다. 인생 마무리 시기를 병원만 돌아다니며 지낼 수는 없다. 그러려면 병을 보는 지식과 삶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증상을 치료 대상으로 생각하며 환자로 살아간다면 A씨는 77세 여성이다. 평생 미혼으로 살면서 40년 넘게 공직 생활을 했다. 퇴임 후 연금으로 그 나름대로 여유 있는 노후 생활을 하고 있다. A씨는 화려한 싱글의 원조였다. 뭐든 자신 있고, 독립적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몇 년간은 직장 생활로 맺어진 인맥도 있고, 이런저런 모임도 많아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70대로 들어서면서 건강 문제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쾌활·낙천은 사라지고, 부정과 불안이 생활을 지배했다. 여기저기 증상이 생길 때마다 이 병원 저 병원 순례가 시작됐다. 배가 이유 없이 더부룩하고 쿡쿡 아프다, 기침이 자꾸 나온다, 혀가 다 갈라졌다, 눈이 시리다 등 다양한 호소가 쏟아졌다. 특별한 이상은 없는데, 검사만 자꾸 늘어났다. 사소한 신체 문제도 죄다 질병으로 여기며 '의사 의존형' 사람이 됐다. 평생 병원 신세 안 질 것 같던 씩씩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를 사회학 용어로 '메디컬리제이션(medicalization)'이라고 한다. 모든 증상을 치료 대상이라 생각하며 환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초기 고령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그 시기에 와 있다. 이는 난생처음 늙어 보는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신체 고령화를 모르기 때문이고, 노화와 질병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까닭이다. 고령 친화적 생활 습관으로 해결 85세인 B 여사는 지금까지 큰 병치레 없이 잘 지냈다. 수술도 받은 적이 없다. 동네 병원에서 고혈압약을 타 먹고 가끔 무릎 관절 물리치료를 받는 정도다. 그 나이에 누구나 있는 일상이다. 멀쩡히 지내오다가 석 달 전부터 가래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가래약을 타서 먹는다. 가래 증가는 최근 들어 전국 노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일게다. 호흡기내과 의사들은 공기 중 미세 먼지 증가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노인들은 숨을 뱉는 힘이 약해서 제대로 배출하지 못한 가래가 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 들면 횡격막과 호흡에 쓰는 근육이 약해진다. 폐포와 폐 안의 모세혈관도 준다. 가만히 있어도 예전보다 산소가 적게 들어와 평소보다 과격하게 움직이면 숨이 찰 수 있다. 이건 질병이 아니다. 체내 산소량에 적응하면서 운동량을 꾸준히 늘리면 숨찬 증세는 좋아진다. 같은 이유로 기침도 약해진다. 미세 먼지 많은 날 기침이 자주 나온다는 호소는 되레 청신호다. 기침은 폐에 들어온 세균이나 이물질을 밖으로 나가게 하는 청소 효과를 내는데, 그런 날 기침이 있다는 것은 호흡 근육이 제대로 살아 있다는 의미다. 만성적 기침이 아니라면 병원을 찾을 이유는 없다. 고령에 위장은 더디게 움직인다. 탄성도 줄어서 음식이 조금 많이 들어오면 금세 부대낀다. 담즙 생산이 줄어 과거에 먹던 대로 기름진 고기를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우유를 흡수하는 젖당 분해 효소도 덜 생산돼 과한 유제품으로 속이 거북하거나 가스가 찰 수 있다. 대장은 더 느리게 움직여서 변 덩어리를 만들어주는 식이섬유 섭취가 줄면 변비가 오기 쉽다. 이런 것은 고령 친화적 생활 습관으로 해결할 수 있다. 노화 현상을 모르면 노년의 건강을 망칠 수도 고령화 패턴을 알면 서로 편할 수 있다. 청력 감소가 그렇다. 나이 들수록 고음(高音)을 듣기 어려워진다. 노인성 난청일 때는 단어가 잘 안 들려 말하는 사람이 중얼거리는 것으로 오인하는데, 특히 모음보다 자음을 잘 못 듣는다. 자음은 단어를 식별하는 주된 소리인데, ㅋ·ㅌ·ㅍ·ㅊ 등 자음 대부분이 고음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는 큰 소리로 말하기보다 자음을 또렷이 발음하는 것이 대화 소통에 도움이 된다. 청력이 많이 떨어진 부모에게 거실에서 "테레비 켤까요?" 하고 말하는 것보다 "에레비 결까요?" 말하면 입모양과 모음을 듣고 더 잘 알아 들을 수 있다. 대개 톤이 높은 딸보다 저음인 아들 말을 더 잘 알아듣는다. 물론 나중에는 저음도 듣기 어려워진다. 고령자는 귀지가 쌓여 청력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고, 굵은 털이 귀 안에서 자랄 수 있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다. 대비하고 고민하지 못한 채 어느 덧 초고령 장수 사회 노화 현상을 모르면 노년의 건강을 망칠 수도 있다. 나이 들면 음식을 삼킬 때마다 인후가 기도 뚜껑을 닫는 조화로움이 둔해진다. 노인들이 자주 사레들리는 이유다. 게다가 노년의 골 감소증은 어느 정도는 숙명인데, 목뼈에 골다공증이 오면 머리가 앞으로 점차 숙여지게 된다. 이는 기도를 덮는 인후를 압박한다. 사레들리기 쉬운 상태에서 아무 생각 없이 기름 바른 인절미나 조랑 떡, 한입에 쏙 들어가는 젤리 등을 드시게 하다간 사달 나기 십상이다. 무심코 건넨 건강 보조 약물이 몸을 그르칠 수 있다. 고령에는 간(肝)세포 수가 줄고, 간으로 흐르는 피가 줄어든다. 화학 공정 역할을 하는 간 효소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그 결과 약물 대사가 늘어지고, 체내 잔존량이 늘어나 약화(藥禍)가 일어날 수 있다. 어르신에게 섣부른 약선물은 위험한 행동이다. 나이 70~80대 어르신들은 한국 고령화 첫 세대다. 늙는 데에 대비하고 고민하지 못한 채 어느덧 초고령 장수 사회 강물로 흘러가고 있다. 이들은 노화에 대한 이해가 적고 준비가 부족했다. 노인 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노년기에는 다소 우울하고 불안하고, 소화도 더디고, 어느 정도 기억력이 떨어진다.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수준이라면 그건 정상 노화다. 그 모든 것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약물로 해결하려 들면 한도 끝도 없게 된다. 노화에 적응해가는 삶도 필요한 것이다. 이제 약 쌓아놓고, 약 권하는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환자 병문안 가면서 약 같은 것을 선물로 가지고 가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으리라. 인생 마무리 시기를 병원만 돌아다니며 지낼 수는 없다. 인생 마지막인 죽음 장소마저 병원에 의존하지 않는가. 메디컬리제이션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병을 보는 지식과 삶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노화를 받아들여야 노년이 편하다. 글 김철중·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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