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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66세에 ‘최후의 심판’을 완성한 미켈란젤로

위대한 조각가이자 화가, 건축가던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3대 거장 중 한 명이다. 원래 조각가던 그가 시스티나 성당 벽면에 그린 ‘최후의 심판’을 완성했을 때의 나이는 66세다.

24세에 조각으로 거장이 되다

미켈란젤로는 1475년 이탈리아 카센티노의 카프레세에서 태어났다. 그가 6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어렸을 때는 시골에 있는 유모의 집에 맡겨졌다. 유모의 남편이 석공이었는데, 이것은 그가 후에 조각가로서의 재능이 두드러지게 되는 데에 큰 향을 주었을 것이다. 마을 행정관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인 미켈란젤로가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울 공부를 하길 원했지만, 그는 조각용 끌과 망치를 가지고 노는 것이 가장 즐거운 아이다. 하지만 당시는 예술가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했던 시기다. 그래서 집안에 예술가가 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아버지와 삼촌들은 매를 때려가면서 반대했지만, 미켈란젤로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미켈란젤로는 13세 때 당시 피렌체의 뛰어난 화가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제자로 도제수업을 받는다. 일년을 스승 밑에서 배우다가 그림에 싫증을 내고 조각을 원해,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조각 학교에 입학한다. 천재적인 재능은 일찍 발견되었다. 메디치 가의 로렌초 공은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눈여겨보았고, 그의 배려로 피렌체의 뛰어난 예술가와 미술 수집품을 보며 성장했다. 

24세에 그는 ‘피에타’라는 조각작품으로 순식간에 거장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현재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이 작품은 성모 마리아의 아름다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성모상에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그의 이름이 조각되어 있다. 그의 유명한 조각상 중 또 다른 작품에는 ‘다비드’가 있다. 이 작품은 원래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 놓여져 있다가 공해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재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조각상은 압제에 대한 피렌체 공화국의 승리를 상징하게 되었다. 

중년에 새롭게 도전한 회화

미켈란젤로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교황의 지시를 받아 작업을 했다. 그중에서도 교황 율리우스 2세와의 관계는 미묘했다. 두 사람은 마치 형제처럼 다정했다가 불화가 반복되는 그런 관계다. 율리우스 2세는 당시 벽화의 기법을 전혀 알지 못하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그림을 그리라고 주문한다. 

미켈란젤로의 평전을 쓴 로맹 롤랑은 미켈란젤로를 질투하던 브라만테가 교황의 총애를 받는 미켈란젤로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교황에게 그를 추천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할 것이고, 그의 명예가 실추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림에 익숙하지 않고 교황에게 보수도 받지 못해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어하던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천지창조’를 완성했다. 저명한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 교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회화작품으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꼽았다.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작업 때가 미켈란젤로의 개인사에서 가장 우울했을 때였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일단 그가 회화라는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천장화였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하면 회반죽이 떨어지기 일쑤였고, 그림을 그리려고 자세를 잡는 것도 힘들었으며 전체적인 구도를 살피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가의 고통은 바로 감상자의 희열이 된다는 진리를 증명이라고 하듯, 처음 도전한 회화에서 엄청난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된 도전과 창조

‘천지창조’와 더불어 시스티나 성당 벽면에 그린 벽화 ‘최후의 심판’은 그의 나이 60세에 작업을 시작해서 66세인 1541년에 완성하였다. 또한 현재 바티칸에 위치한 성베드로 성당의 수석 건축가로 임명된 1546년에는 그의 나이 71세였다. 미켈란젤로가 처음 성공한 분야는 조각이었지만 40대에는 화가, 60대에는 건축가로 나이가 들어도 그의 도전과 창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는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론다니니의 피에타’라는 조각작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말년에는 병상에서 일어나 작업을 하기 위해 비를 맞으며 작업장으로 갔다가 제자의 등에 업혀 오기를 여러 차례 하기도 하였다. 

이런 창작의 고통 속에서도 그가 장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초인적인 열정 때문이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도 환희와 희망을 보고, 감동하고, 앞으로 살아갈 의지를 마음속에 품게 된다. 

사람들은 예술과 천재성의 관계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예술가의 천재성은 젊은 나이에 꽃을 피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피카소와 라파엘로 같이 젊은 시절 일찍부터 성공의 가도에 올라선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런 젊은 천재들과 달리 40~50세가 넘어 성공을 거머쥔 예술가도 적지 않다. 오히려 예술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한순간의 천재적인 재능에 의존하기보다는 끊임없는 노력과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작품에 담아냈다.

미켈란젤로도 마찬가지였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피에타’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의 작품들 중 상당수는 40대 이후에 완성되었다. 60대 이후에도 ‘최후의 심판’이나 성베드로 성당과 같은 걸작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예술작품도 한 인간의 철학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나이 든 예술가도 젊은 예술가만큼이나 혁신적으 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김대근·NH농협은행 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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