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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바다는 희미하다 – 부산 원도심 스토리투어

바다는 희미하다
구공탄 화덕 위 석쇠의 먹장어가 노릇해진다
대선소주 한 병과 원통형 술잔 두 개
난로 대용 쇼트닝 깡통이 있다
내리치면 힘없이 부서질 듯한 의자에
의자 같은 청년 둘이 앉아 있다
그들은 고뇌하고 있다
아니 그들은 고해하고 있다
디오니소스에게
-이승원 <1981년 자갈치시장> 중에서
학창 시절, 부산을 바라보는 ‘창(窓)’은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진들이었다. 그중 하나인 <1981-자갈치시장>을 사진 그대로 옮길 수 없어, 사진을 보고 쓴 시인의 시로 대신했다. 예전부터 용두산공원이거나, 영도다리거나, 자갈치시장이거나, 광안리 바닷가거나, 부산에만 가면 왠지 건들건들해졌다. 그것은 어쩐지 낭만적이고, 어쩐지 풍류적이고, 어쩐지 부산하고, 어쩐지 잡다한 그 도시의 분위기 탓이었으리라. 그를 ‘해양성 기질, 해양성 문화’라고 풀기도 하지만 그 속내에는 그만한 삶의 뿌리가 자리하고 있다. 

부산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그 많은 시장과 산복도로들이다. 그리고 그 연유는 대부분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가뜩이나 ‘산을 등에 업고 바다를 가슴에 안느라’ 비좁기만 한 땅이 피란민들로 가득해지면서 산비탈은 판잣집들로 뒤덮이고, 무엇이라도 내다팔아야 할 사람들로 시장은 북적였다. 이 시절 불과 몇 년 사이에 부산 인구는 두 곱 넘게 늘어났다. 그들은 낮이면 자갈치시장이나 국제시장, 부평깡통시장쯤에서 ‘장사치기’를 하거나 하다못해 지게 품팔이라도 하면서 끼니를 때우고, 밤이면 산복도로로 돌아가 잠을 잤다. 

‘산복도로(山腹道路)’는 산 중턱을 지나는 도로를 이르는 말이지만, 부산에서 산복도로는 그냥 찻길이 아니라 아예 산동네 전체를 이르는 고유명사다. ‘초량동 산복도로’에 산다고 하면, 도로 한가운데 사는 게 아니라 그곳 산동네에 사는구나 하는 것을 부산 사람들은 다 안다. 전쟁 때 피란민들로 형성된 산복도로는 전후 산업화시기 이농 이주민들로 이어지면서 부산의 독특한 주거문화를 이루어왔다. 그리고 원도심의 시장들과 함께 애환으로 점철되던 그 ‘풍정’들은 세상이 바뀐 지금까지도 여전히 부산을 상징하는 ‘풍경’들로 남았다. 

‘깡깡이길’ 지나 ‘흰여울길’로

길의 시작은 <굳세어라 금순아>로 ‘유서 깊은’ 영도다리(정확히는 영도대교)고, 다리 건너 봉래산 기슭의 산동네이자 영화 <변호인>의 촬영지인 흰여울마을을 찾아가는 길이다. 다리를 건너면 가수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가 서 있고, 오른쪽으로 선박수리소가 몰려 있는 도선장길이 나온다. 이른바 ‘깡깡이길’이다. 망치로 선박의 찌그러진 부분을 펴는 작업을 할 때 ‘깡깡’ 소리가 난다 해서 이름 붙여진 깡깡이길은 부산시에서 조성한 ‘원도심 스토리투어’ 1코스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낙들이 이곳에서 ‘깡깡이질’로 생계를 유지했다. 안전장치 없이 허공에 매달린 널빤지에 앉아 하루 종일 쇳가루를 들이마시며 망치질을 하다 보면 때론 난청이 된 아낙도, 때론 널빤지에서 추락해 불구가 된 아낙도 많았다. 그때의 고달픈 깡깡이 소리는 사라지고, 크레인을 타고 산더미처럼 높은 배 위에 올라 작업을 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윽고 길은 절영해안도로로 이어진다. 영도의 원래 이름인 ‘절영도(絶影島)’에서 따온 절영해안도로는 영선동에서 동삼동 중리해안까지 약 3km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안산책로다. 그리고 이 길은 초반 300m 정도 흰여울마을에 이르는 흰여울길과 겹쳐진다. 이제 몇 안 남은 영도 해녀들의 작업장 탈의실 옆으로 난 ‘맏머리계단’을 오르면 온전히 흰여울마을이다. 계단 높이만큼 바다는 멀어지고 하늘은 가까워진다. 흰여울마을에서 이송도전망대에 이르기까지 ‘맏머리계단’ 말고도 ‘꼬막계단’, ‘무지개계단’, ‘피아노계단’ 등이 하늘과 땅을 오가며 서로를 이어준다. 흰여울길은 한쪽으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절벽과, 다른 한쪽으로 담장 너머 아련한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다. 집들은 미로 같은 골목으로 이어지고, 열린 문으로 밥 짓는 냄새가 금방이라도 몸에 배어들듯 지척이다. 먼 바다에는 하릴없는 배들이 점점이 떠 있다. ‘선박 주차장’인 묘박지(錨泊地)라고 했다. 절박은 그 위치에 의해 때론 절경으로 바뀐다. 여울 같은 길을 꿈결처럼 따라가다 보면 이내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을 인 ‘흰여울안내소’가 나타난다.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된 집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송우석(송강호 분) 변호사의 단골 국밥집 주인 최순애(고 김영애 분)의 집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굴곡진 현대사의 한 구비가 펼쳐진다.“니 변호사 맞재? 변호사님아, 니 내 쫌 도와도.”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할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다.”

국제시장과 헌책방골목

다시 영도대교를 건너 자갈치시장으로 향한다. 자갈치시장은 부산에서 가장 큰 바다다. 아니 가장 큰 바다였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자갈치 아지매들의 활력으로 넘쳐나던 자갈치시장은 현대화사업이 진행되면서 외려 활기를 잃어버렸다. 일제강점기 때 매립공사를 통해 남항이 건설되면서 소형 고기잡이배들이 내놓은  수산물을 파는 노점들로 비롯된 자갈치시장은 오랫동안 이른바 ‘판때기장수’라고 부르는 아지매들의 힘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그들이 자꾸만 한쪽으로 밀려나고, 그들의 활력 대신 ‘상권’이 자리를 차지한 지금의 자갈치시장은 마치 방파제에 갇힌 바다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시장 한켠의 선술집에 자리를 틀고 앉아 꼼장어 한 접시에 소주를 곁들이면서 ‘1981년’의 희미한 자갈치시장을 그려본다.

자갈치시장에서 길 건너 BIFE거리를 지나면 부평깡통시장과 마주한 국제시장이다. 국제시장 역시 동명의 영화 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한국전쟁 이후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우리 시대 아버지들은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 영화의 긴 선전문구이지만,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이라 우리가 겪는 기 참 다행이다’라는 대사에 대한 한 젊은 영화평론가의 ‘토 나오는’ 반론 때문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어쨌거나 영화에 등장한 ‘꽃분이네’를 비롯한 국제시장은 ‘관광명소’가 되었다.

‘아날로그세대’인 나는 차라리 국제시장 끄트머리에서 시작하는 보수동 책방골목이 훨씬 편안하고 따뜻하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이북에서 피란 온 한 부부가 보수동 골목 안 목조건물 처마 밑에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헌책으로 노점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보수동 책방골목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보수동 책방골목 역시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구경꾼들이 태반이지만, 그 또한 핀잔할 일은 아니다. 여행 역시 책과 같아서 때론 새로운 것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오래된 추억을 뒤적이는 기쁨 또한 만만치 않다. 책방골목 초입의 보수서점 간판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글·사진 유성문·여행작가

http://all100plan.com/2018-autumn-pi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