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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가족의 행복을 위한 남편의 선택

남편은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길에 아내가 함께하길 원했다. 그러나 부인은 그 여정을 힘겨워하며 이혼하기를 원했다. 가족의 행복을 바랐던 이 남편,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한 부부가 상담실에 왔다. 부인이 이혼하기 전 마지막으로 상담을 받아보자고 남편에게 제안해서였다. 남편은 다부진 체격에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심각한 얼굴이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목소리도 굵은 남자다운 외모였다. 부인은 미소 없이 찌들고 어두운 얼굴에, 머리를 뒤로 묶고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생기가 없는 모습이었다. 

남편은 종갓집 장손으로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족과 부부 상(像)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을 하면 돈을 버는 일은 남자가 하고 그 외 가정살림이나 육아, 자녀양육은 여자가 하는 게 옳다고 믿고 있었다. 책임감이 강한 부인은 맏며느리로서 시댁의 행사를 챙기고, 시골에 계신 시부모님을 자주 방문하고, 엄마로서 자녀양육과 살림을 맡아서 하다가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남편의 기준에 못 미치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우울증에 걸렸고, 더 이상 남편이 바라는 맏며느리·아내·엄마 역할을 못할 것 같아 이혼하고 싶다고 했다. 

가족제도는 변하는데 역할은 그대로?

한국 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하면서 가족제도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하였다. 대가족에서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부부 관계가 나름대로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핵가족에서는 기존의 가부장적인 가족·부부 관계가 핵가족이 당면한 가족·부부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만든다. 

대가족에서는 엄마가 맡는 육아와 자녀양육, 살림을 할머니·고모·삼촌의 도움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핵가족에서는 이들 역할이 오롯이 부부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러다 보니 자녀를 둔 엄마는 과부하가 걸리게 되었다. 요새 길거리에는 “육아는 부부 공동의 일입니다”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변화되는 가족 체제에 맞게 사람들의 생각이 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계몽을 하는 것이다. 

상담실에 찾아온 이 부부가 겪는 어려움은 장손이고 맏며느리이면서 핵가족제도 하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대다수 한국 부부들이 함께 겪고 있는 어려움이다. 사회는 변했지만 어른들과 남자들의 가부장적인 생각이 변하지 않아서이다. 

상담하러 와서 남편이 처음 한 말이 “나는 결혼해서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였다. 그때 필자는 남편이 바라는 행복과 부인이 바라는 행복이 같은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남편은 놀랐다. 여태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이 곧 아내가 원하는 행복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부인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아내가 행복해하기는커녕 불행을 호소하고 이혼을 원하자 당황스럽고 아내가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의무에 매달리는 남편 VS 행복을 만드는 남편

부부는 상담에 열심히 참여했고, 변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남편은 자신의 가부장적인 사고를 바꾸려고 애썼다. 먼저 집안일과 자녀양육이 오롯이 아내의 몫이라는 생각을 고쳤다. 사실 부인은 집안일과 자녀양육으로 정말 지쳐 있었다. 남편은 부인의 요청대로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을 도맡았다. 

남편의 이러한 변화에 동기를 부여한 것 중 하나는 자녀였다. 아빠는 딸이 커서 결혼상대자인 남자를 고를 때 어떤 남자를 고를지, 아들이 훗날 남편이 되어 부인과 어떻게 결혼생활을 해나가야 할지 그 기준이 된다. 남편은 아내가 아무리 피곤해도 매일 아침 밥상을 차리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자신의 딸이 나중에 결혼해서 아내처럼 육아와 살림으로 지친다면 사위가 도와주기를 바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로서 자신의 변화가 딸이 나중에 커서 배우자를 고를 때, 아들이 실제 결혼생활을 할 때 역할모델이 될 것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남편은 종갓집 장남으로서 하기 어려운 결정도 내렸다. 아내가 당분간 맏며느리 역할을 쉬도록 한 것이다. 지쳐 있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부모님에게 도움을 구했다. 물론 그러기까지는 심적 갈등이 많았다. 맏며느리인 아내가 시댁 행사나 명절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친척들 앞에서 부모님 체면이 구겨지고, 장남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것 같아 부끄럽고, 무엇보다 불효한 자식과 형편없는 남편으로 비난받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남편은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하는 부모님을 믿고 손을 내밀었다. 

먼저 아내에게 절대적인 휴식이 필요하기에 당분간 집에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 말씀드리고 부모님의 양해를 구했다. 또 자신이 부부 사이의 문제를 잘 해결해나갈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말씀드렸다. 남편의 부모님은 아들의 상황을 잘 이해했고, 며느리가 시댁 행사나 명절에 참여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지난해 추석 남편은 본가에서 아내 없이 첫 명절을 보내면서 친척들의 시선이 실제로는 크게 신경 쓰이는 것도 아니고, 아내 없이 명절을 보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행복해지려면 변화해야 한다

남편의 이러한 결정에 부인은 생애 처음 사랑받는 느낌이 들면서 행복했다. 남편의 큰 변화에 부인의 어둡고 찌든 얼굴이 밝아지고 생기가 돌았다. 부인은 전에는 남편 때문에 생긴 화를 아이들에게 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남편과의 관계가 회복되자 자녀에게 화를 내지 않게 되었다. 

남편은 자신의 변화에 아내와 아이들이 변화하고 자기가 그렇게 바라던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힘을 얻었고 ‘내가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행복했다. 

남편은 해병대 출신으로 평소 남자다움을 최고로 여겼고, 그래서 외모도 말투로 카리스마 넘치던 남성이었지만, 상담을 통해서 자녀가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부드러운 아빠, 아침 식사를 손수 준비하고 아이들을 챙기는 다정한 남편이 되었다. 무엇보다 자녀와 부인이 존경하 는 ‘남자’가 되었다. 

한영혜·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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