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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고령사회가 낳은 ‘사별 경제학’

사람은 늙는다. 늙으면 혼자다. 결혼 여부와는 무관하다. 부부라도 최후엔 둘 중 한 명만 남는 법이다. 당연히 고령사회일수록 사별 경험이 많아진다. ‘사별 이후에 사는 법’에 관심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사별 인구를 겨냥한 다양한 맞춤형 서비스가 선보이고 있다.
일본에선 배우자와 사별하고 홀로된 사람을 ‘보쓰이치(沒イチ)’라 한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이를 뜻하는 ‘바쓰이치(バツイチ)’에서 유래했다. 말하자면 ‘이혼 돌싱’과 구별되는 ‘사별 독신’이다. 

보쓰이치는 이른바 ‘사별 경제학’의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사별 이후 새로운 인생을 전향적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지원하는 서비스는 향후 유망한 분야다. 인식의 변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사별이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숨길 것도 없다는 것이다. ‘사별=고립’의 등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회적로도 바람직하다. 

일본은 2017년부터 단카이세대(1947~49년생, 일본 베이비붐 세대)가 70대에 진입했다. 초고령사회답게 사별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부부관계는 이제 기혼 시기와 이혼·사별을 묶은 이사별(離死別) 시기로 구분된다. 이 사별 중에서도 이혼 커플은 25%뿐이고 나머지는 사별 독신이다. 

사별 이후의 고립감, 남자가 더 커

배우자를 보내고 홀로 남으면 충격이 적잖다. 결혼 기간이 길수록 심하다. 1년은 지나야 괴로운 상황이 바닥을 치고 3년은 돼야 회복된다. 우울증까지 동반되면 회복 기간은 더 길어진다. 홀로 된 이후의 고독감은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상실감과 무력감에 집이든 밖이든 맘 붙일 데가 거의 없다. 망자와 직면하는 게 두려워 유품을 정리하지 못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보쓰이치는 이 괴로운 현실로부터의 탈피라는 의미를 갖는다. 조용하고 냉정하게 사별의 상처를 대하고 새로운 생활에 진입하기 위한 공간과 기회를 갖자는 차원이다. 

일본의 보쓰이치는 급증세다. 199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중 560만명이었으나 2015년에는 864만명으로 1.5배 늘었다.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아 남성의 6배 이상이다. 

가족해체가 본격화된 현대사회에서 사별은 곧 독거노인으로의 변화를 뜻한다. 하지만 사별 이후 남녀의 상황은 엇갈린다. 특히 남성은 외출 시간이 줄고 대화 상대가 없어진다. 릿쿄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사별 이후 행복은 여성(10점 만점 중 8점)이 남성(5점)보다 높다. 아내는 남편의 뒤치다꺼리가 없어져 일견 홀가분해지는 반면, 남편은 아내를 먼저 보낼 상황을 미처 생각지 못해 준비 부족으로 당황하게 마련이다. 

여행에서 재교육까지, 사별 독신 위한 다양한 상품

사별 이후 닥치는 상실감을 이기려면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준비됐느냐의 여부가 보쓰이치의 생활수준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은퇴 후 전념할 지역·봉사 활동 등의 고립 방지책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건 슬픔을 극복하겠다는 자세다. 이를 증명하듯 일본 국립암센터의 명예총장 카키조에 타다오가 부인과의 사별과 이후 독립 과정을 기록한 책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후 사별의 슬픔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방식을 열어젖히려는 능동적인 움직임이 늘었다. 

이 같은 새로운 현상은 새로운 수요로 연결된다. 기업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여행업체에서는 사별 독신의 개별여행이 늘 것으로 내다보고 전용 상품까지 내놓았다. 유통업체도 나섰다. 독거 노후를 지원해줄 최강의 도시 기반은 편의점이다. 특히 남성은 가사 능력 없이도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상품을 선호한다. 재교육 관련 업계도 움직임이 활발하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평생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두 번째(Second Stage) 교육체계’가 그렇다.
관련 모임도 많아졌다. 이른바 ‘보쓰이치회(會)’다. 릿쿄대학에서 사생학(死生學)을 가르치는 모 교수가 결성한 모임이 화제다. 이 정기모임에선 안부 확인부터 정보 공유까지 새로운 생활방식을 둘러싼 다양한 화제가 오간다. 취미를 함께하거나 때때로 파티나 클럽 같은 젊은이들의 공간에까지 동반하며 삶을 즐긴다. 

이런 모임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보쓰이치의 전형적인 생활풍경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홀로된 후 집 안에만 머물며 고립과 질환의 악순환을 겪는 함정에서 탈출하면 개인 차원은 물론 사회 전체로도 고통과 비용이 줄어든다. 무엇보다 이심전심의 동병상련이 공통분모라 모임 참가가 지속적이다. 다른 데서는 이야기하지 못할 것도 이곳에서만큼은 서로 털어놓음으로써 상처가 치유된다.

‘집합장소 확인투어’라는 이름의 당일치기 여행상품도 눈길을 끈다. 단체여행 집합장소에 미리 가보는 일종의 ‘예습여행’ 프로그램이다. 일본의 유명 여행사 ‘클럽투어리즘’의 인기 상품 중 하나가 ‘하네다공항에서 점심 후 주요 집합장소 둘러보기(4900엔)’다. 단지 집합장소를 미리 봐두자는 것뿐인데도 매회 만원이다. 특히 고령의 독신 고객에게 인기다. 나이가 들어 헷갈리기 쉬운 터미널 구분법, 또는 유사시 대처 정보 등을 세세히 알려줘서다. 평생 가족여행에 따라다니기만 한 이들에게는 꽤 유용한 정보일 수밖에 없다. 본편이라 할 실제의 단체여행은 이 경험을 토대로 이뤄진다. 버스 좌석이든 호텔이든 1인 전용이며, 자유시간도 충분히 제공된다. 원할 때만 옆 사람과 대화하면 끝이다. 고객의 70%는 여성으로, 자연스러운 대화 기회에 대한 만족도가 특히 높다. 

재혼해도 동거 ‘NO’…사후 이혼으로 인척관계 정리

평균수명의 연장에 따라 새로운 짝을 찾아 나설 가능성도 커진다. 이를 반영해 대형 결혼상담소 중 일부는 중년 이상의 보쓰이치를 대상으로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원 규모는 2년새 2배나 늘었지만 성혼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자녀의 반대가 장벽이다. 부모 재혼에 대한 저항감뿐 아니라 상속 문제도 첨예하다. 또 배우자를 간병한 경험이 있는 경우 스스로 재혼을 포기한다. 배우자의 유품이 있는 공간에서 다른 이와 동거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고, 결혼 이후 유족연금을 못 받을 것을 염려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동거하더라도 재혼하지 않는 ‘파트너 관계’를 희망하는 경우도 증가세다. 

새로운 인생 경로에 뛰어드는 사례도 있다. 전업 주부에서 벗어나 창업하거나 도시 생활을 접고 귀향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극단적으로는 사후 이혼, 즉 인척관계 종료신청을 택한다. 법적 개념은 아니되 사별 후 배우자 가족과의 인척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신고 건수는 2005년 1,770건에서 2015년 2,780건으로 늘었다. 남편 가족의 불합리한 재산 요구와 시부모의 간병 압박 등으로 여성이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인척관계를 끝내도 죽은 배우자와의 법률관계는 남는다. 즉 상속연금이나 유족연금은 유효하다. 

전영수·한양대학교 교수

http://all100plan.com/2018-autumn-yeol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