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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하다고 말하던 ‘어느 가족’에게 생긴 일 <어느 가족>

인자한 할머니, 아들과 함께 걷기를 좋아하는 아빠, 다정하고 활발한 엄마, 아름다운 이모. 이보다 더 따뜻해 보이는 가족은 없다. 삼대가 같이하는 화목한 저녁밥상은 이제는 사라져가는 풍경이다. 그러나 밥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속내는 예사롭지 않다. 아빠 오사무(릴리 프랭키)는 아들에게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는 법을 가르치고, 그렇게 훔쳐온 낚싯대로 아들과 낚시를 간다. 엄마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훔쳐온 물건으로 저녁을 차린다. 엄마의 팔엔 자살을 기도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모 아키(마츠오카 마유)는 유사 성매매업소에서 일한다. 할머니 하츠에(키키 키린)는 남편이 남긴 집과 연금을 받아 생활하면서도 가끔 의붓자식에게 들러 돈을 뜯어낸다. 아들 쇼타(죠 카이리)도 이들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곧 드러난다.
영화 <어느 가족>의 일본어 원제는 ‘만비키(万引き) 가족’, 곧 ‘좀도둑 가족’이란 뜻이다.

이들은 왜 가족이 아닌가

지난 5월 제71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어느 가족>은 우리가 꿈꾸는 가족의 이미지를 뒤집는 영화다. <아무도 모른다>(2004)부터 오랫동안 가족의 의미를 탐구해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번엔 관객들이 직접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 첫 질문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느 가족>에서 혈연으로 연결된 사람들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 시바타라는 성을 쓰고 있지만 초반부터 시바타라는 사람은 하츠에 할머니의 전 남편이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의 연금을 수령하기 위해 모인 가족, 생활비를 아끼거나 살 곳이 필요해서 같이 사는 사람들을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보통 가족은)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지만 우리는 선택했으니까 선택받는 것보다는 가족간의 유대가 더 강하지 않을까?” 

노부요는 자신들이 진짜 가족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부모를 선택할 기회가 없이 태어난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어느 추운 겨울날 쇼타와 오사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베란다에 갇힌 채 떨고 있는 5살 소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원치 않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채로 학대를 당해온 유리(사사키 미유)를 그들이 가족으로 맞아들이는 과정을 통해서 이들이 어떻게 가족을 ‘선택’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유괴한 게 아니라 주워왔어요. 버린 사람은 따로 있는 거 아닌가요?” 노부요의 말처럼 ‘어느 가족’은 가족 테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인 잉여들의 유사 가족이다. 그럼에도 다른 모든 가족들이 그렇듯이 이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처럼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폭죽은 안 보이니까 소리를 보라고.” 고층 건물 사이에 갇힌 낮은 단층집에서 지붕 위로 고개를 빼며 오사무가 외친다.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부부가 아이들을 데려와 평범한 가족처럼 살기를 꿈꿨듯 불꽃놀이를 볼 기회도 없는 초라한 집에 사는 사람들은 불꽃놀이 소리만으로 기뻐한다. 

지금은 가족주의를 비판하는 것 자체가 진부하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오사무와 노부요에게 가족이란 가질 수 없는 꿈이고, 집 나간 딸을 해외에 유학갔다고 둘러대는 아키의 부모에게 가족이란 없어도 있다고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주의는 불꽃놀이처럼 모습은 없고 소리만 요란한 어떤 것이다. 

깨어진 대안가족의 꿈

그렇다고 당신들은 이 가족을 지지할 수 있을까? <이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핏줄이 섞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친부모와 친자식처럼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어느 가족>은 그런 낭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성장기에 접어든 쇼타는 불편한 질문이 많아진다. 어느날 도둑질에 실패한 쇼타는 오사무에게 “가게 할아버지가 동생에겐 (도둑질을) 시키지 말랬어요”라고 불쑥 말한다. 쇼타가 정말 묻고 싶었던 말은 “도둑질은 나쁜 게 아닌가요?”였을 것이다. 쇼타는 “가게에 진열된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는 확신에 가득찬 오사무에게, 훔친 수영복을 유리에게 입히고 바다에 놀러가서 기뻐하는 노부요나 하츠에에게 차마 이런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한핏줄인 가족들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하고 사는 것처럼 유사 가족들끼리도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면서 살 수는 없다. 게다가 정상 가족 위주의 사회에서 유사 가족들은 작은 마음의 균열만으로도 완전히 깨지고 마는 허약한 집단이다. 

가족드라마는 항상 가족 구성원 중 어느 하나가 문제를 일으켜서 전체 가족이 갈등을 겪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주로 아버지나 어머니의 사랑으로 마침내 문제가 해결되고 가족이 화해에 이르는 결말이다. 유사 가족에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쇼타가 경찰에 잡히면서 가족의 울타리는 하루아침에 허물어져버린다. 아이들을 사랑했던 가짜 부모보다는 낳기를 원치 않았고 학대했지만 친부모쪽이 더 정당하다는 것이다.

오사무가 쇼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것도, 노부요가 유리를 데리고 있었던 것도, 핏줄이 얽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범죄의 증거로만 받아들여진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할머니와 엄마·아빠의 은밀한 과거사도 드러난다. 부모로, 가족으로 그들을 선택했던 아이들의 마음엔 커다란 의혹이 깃든다. 아이를 입양했다가 다시 돌려보내는 파양률이 가장 높은 시기는 아이들이 좀도둑질을 배우는 10~12살때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성장의 한 시기에 금지된 행동을 해보기도 하면서 사회화의 길목에 접어드는데 자신이 낳은 아이라면 가르치고 고쳐야 할 행동으로 여긴다. 그런데 어떤 입양부모들은 친부모의 유전자 때문인가 의심하다가 결국엔 입양을 되물리려고까지 한다는 것이다. 가족주의는 핏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다른 점은 모두 참고 살아야 한다는 혈연주의의 다른 말이다.

가족주의 이후의 사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환상의 빛>에서 우리가 가족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가족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대안가족에 대한 희망을 심어줬지만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가족이라는 친밀한 관계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잘라말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가난한 아버지 유다이 역을 맡아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던 배우 릴리 프랭키는 <어느 가족>에서는 “도둑질 말고는 아들에게 가르쳐줄 것이 없었다”라고 고백한다. <어느 가족>은 일본 복지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해서 칸 영화제 수상 당시 일본에서 정치 쟁점이 될 정도로 논란이 컸다. 은밀하게 새로운 가족을 이루어 사회의 한 구석에서나마 살려고 했던 ‘만비키 가족’의 실패는 사회가 만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또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당신들에게 가족이란 무엇이냐고 묻고, 이런 가족도 믿을 수 있겠냐고 의혹을 부추겼던 영화는, 끝으로 가족이 완전히 흩어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인지 질문을 남긴다. 답은 아이들 얼굴을 비추는 마지막 장면에 있다.  

남은주·<한겨레> 신문 사회부 기자
사진 티캐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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