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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노년, 통합과 의미의 시간

노인들을 보면 느끼는 감동이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서 삶에 대한 통찰력, 삶에 대한 희망, 그리고 인생을 대하는 지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가치와 의미를 통합하고, 그것을 물려줄 희망이 있다면 노년은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노인들이 주는 감동

노인 상담학자 포레스트 스커근(Forrest Scogin)은 자신의 책 서두에서 그동안 많은 노인들을 만나며 다음의 네 가지 감동을 경험했다고 했다. 첫째, 노인들의 삶의 굴곡과 이를 극복해온 역전의 스토리를 함께 발견해가는 것, 둘째, 노인들이 삶의 크고 작은 장애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함께 나누어 주는 것, 셋째,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질병과 실패에 직면하였지만 삶의 희망을 굳건히 유지하는 모습을 보는 것, 마지막으로 긴 세월을 살아가며 자신의 삶을 통합하며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지혜를 대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선친께서 퇴직하실 때 함께 나누어준 이야기가 기억난다. 아버지께서 정년보다 조금 먼저 은퇴하시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한 사회 새내기인 내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참 좋으시겠어요. 주어진 삶을 잘 마치시고, 이제는 짐을 좀 내려 놓으셨잖아요.”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며 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그래, 나는 힘겹게 걸음을 옮겨 높은 산을 올라 이제 땀을 닦고 있어. 너는 이제 등산로 입구에 서있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자

많은 사람들이 삶을 ‘여행’이나 ‘등산’에 비유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평탄하고 즐거운 길도 지나지만 너무나도 힘겹고 절망적인 자리도 지난다. 지나온 삶의 여정을 그림이나 그래프로 그려보면 자신의 삶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를 인생 곡선 또는 인생 그래프라고 한다.

우선 가로 축에 0세부터 10대, 20대, 30대 차례로 현재까지 나이를 표시한다. 이 가로 축을 따라, 세로 축에는 중간 지점을 중심으로 가장행복하고 만족스러웠던 순간을 가장 위에 그리고, 가장 힘들고 고단하며 절망적이었던 순간을 가장 아래에 그려보는 것이다.

즐겁고 만족스러웠던 때 느꼈던 기쁨과 행복, 힘들고 절망스러웠던 때 느꼈던 고통을 회상하면서, 좋은 시간에 감사하며 힘들었던 순간을 극복한 비결을 떠올려보며, 그렇게 할 수 있던 자신을 안아주고 격려해보면 힘이 난다.

2015년 우연히 학교 학생들과 태국 시골 작은 마을에 한센병 노인 분들이 모여사는 곳을 방문하여 한 나절을 보내게 되었는데, 관리자분이 이 곳에 거주하는 분들에게 좀 더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어줄 것을 부탁하셨다. 우리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프를 함께 그려보았다. 그런데 매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열 명 남짓한 분들 모두 인생 그래프를 모두 그리고 한 분씩 자신의 그래프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는데, 가장 낮은 자리는 각자 달랐지만 가장 높은 자리, 즉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자리는 바로 ‘이 곳’에 들어온 시점이었으며, 그 후 인생 그래프는 꺾이지 않고 평평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때 깨달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될 만큼 코와 손이 망가졌어도, 서로 의지하며 모여 살며, 좋은 관리자분의 돌봄을 받으면서 삶의 온전한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셨던 것이다. 정말 짧은 한 나절을 보내고 왔지만, 그 때 우리들이 경험한 감동과 그 평안한 얼굴, 관리자분이 보여준 진심어린 삶의 보람과 감사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노년,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시간

‘산을 오르고 땀을 닦으시던 아버지’는 퇴직 후 곧 파킨슨병을 얻으셨다. 이 병은 근육과 신경이 서서히 마비되면서 치료되지 않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무서운 병이다. 병세가 서서히 심해지던 어느 날, 함께 방문한 어린 아들들이 먹을 떡볶이와 샌드위치를 만들어 아버지 병실을 방문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음식을 식도로 삼키지 못하셔서 목에 관을 삽입하고 영양분을 공급받고 계셨다. ‘아차, 내가 잘못했구나. 음식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면 아버지도 너무 드시고 싶으실텐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시는 아버지께서 두 외손자들을 가까이 부르시고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씀하셨다. “얘들아, 떡볶이만 먹지 말고 과일과 야채도 많이 먹어야한다.”

나는 눈물이 울컥 솟았다. “죽음을 앞두고 음식을 하나도 드시지 못 하면서도 어떻게 한결같이 손자들을 먼저 생각할 수 있으실까?” 아버지의 비법은 1년 후 알게 되었다. 그 때는 정말 하루 24시간 내내 침대에 누워만 계시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차마 묻기 어려운 질문을 드렸다.“아버지는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세요?” 아버지의 아주 짧은 답이 돌아왔다. “성경” 그러했다. 몸은 약해져갔지만, 아버지는 그의 삶의 토대가 된 진리와 세계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매일 굳게 붙들고 사셨던 것이다.

그래서 노년을 ‘통합과 의미’의 시간이라고 하나보다. 나도 아버지 나이가 되면 그동안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젊을 때부터 간직했던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어떻게 찾았고, 어떻게 살아내었으며, 이를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를 찾으며 지내고 싶다. 내 아버지를 보면 내 안에 ‘삶의 가치가 통합되고, 그것을 물려줄 희망’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 그 방법은 그리 대단하지도, 어렵지도 않을 것 같다. 

최은영·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기독교상담학과 교수

http://all100plan.com/2018-winter-sak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