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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새로쓰는 버킷리스트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어서 신 앞에 섰을 때 신은 딱 두 가지를 물어본다고 믿었다네.‘너는 삶의 기쁨을 찾았느냐’는 것과 ‘너의 삶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냐’는 것이었지. 자네는 어땠지?”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몇달 뒤 정말로 곧 신 앞에 서게 될 두 남자는 끝내 답을 하지 못하고 피라미드를 내려온다.

죽기 전 해야 할 10가지, 100가지

2007년 ‘버킷 리스트’라는 말을 세계공용어로 만들었던 영화 <버킷리스트>가 얼마전 재개봉했다.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해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위치까지 오른” 세계 굴지의 사업가 에드워드 콜(잭 니콜슨)과 “평생을 가족을 위해 자동차 밑바닥에서 일했던” 정비공 카터 챔버스(모건 프리먼)가 한 병실에서 만난다. 그들은 각자 6개월~1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된다 . 쾌락주의자는 인생의 기쁨을 찾기 위해 산다. 에드워드는 당연히 현란한 삶의 기쁨을 누렸다. 공동체주의자는 인내하고 숙고하며 산다. 카터는 적어도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 산 카터는 정작 자신의 기쁨이 뭔지는 느끼지 못한지 오래였고, 에드워드는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왔다. 영화는 신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해 한 가지 답변만 갖고 있었던 두 노인이 다른 질문에도 “예스!”라고 답하기 위해 남은 생을 달리는 이야기다.
둘은 의기투합해 남은 인생에서 정말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10가지 버킷리스트로 만들고 인생에서 비어있었던 그 항목들을 채우기 위해 병실을 박차고 나간다. 카터는 백만장자인 에드워드 덕분에 개인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가 스카이 다이빙을 하고, 세렌게티 초원에서 사자를 쫓아다니며, 오토바이로 만리장성을 질주하는 경험을 한다. 에드워드는 카터 때문에 예전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장엄함이라거나, 신에 대해 생각해본다.

10년 전 버킷리스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를 시작으로 “죽기 전에 해야 할 100가지 일들” “죽기 전에 가야 할 100가지 여행지” 같은 리스트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대부분 진귀하고 가치있는 일, 책, 여행지, 시간활용 등에 대한 자기계발서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도대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 모든 일들을 어떻게 해낸단 말인가. 죽기 전에 해내야 할 과업들을 정리하는 자기계발서같은 버킷리스트들은 우리를 더욱 불안하고, 숨가쁘게 했다.

10년 뒤 다시 찾은 버킷리스트

10년 동안 버킷리스트라는 화려한 포장지가 닳고닳은 뒤 영화를 다시 보니 인생에서 해야 할 일들을 미리 정리하고 해내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가치있는 일이었는지 궁금해진다. 영화에서 대부분의 버킷리스트는 잠시 그들을 즐겁게 하다 곧 사라질 뿐이었고 살아서는 실현되지 못한 것들도 많다. 버킷리스트 1번 항목, ‘생을 압도하는 장엄한 광경을 보기’ 위해 티벳으로 갔던 에드워드와 카터는 날씨 때문에 그들이 살아서는 결코 히말라야 정상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유쾌하게 웃으며 돌아선다. 버킷리스트는 실현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에 끌려갈 운명을 깨달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동성을 확인하고 살아있음을 채우기 위한 방식일지 모른다. 영화에서 생의 마지막 날을 공중에 붕 뜬듯 살아가던 카터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못이룬 소망들을 자신보다 몇달 정도를 더 살에드워드의 몫으로 남긴다.

오스트리아 작가 장 아메리는 “시간을 되돌렸으면 하고 간절하고도 무망하게 품는 소망은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이라고 지적한다.

<버킷리스트>에선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후회하는 일은 이미 한 일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라는 에드워드의 대사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작가 장 아메리는 “시간을 되돌렸으면 하고 간절하고도 무망하게 품는 소망은 (사실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한 후회라기보다는)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이라고 지적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은 아무도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핀란드에서는 저녁에 자기 전에 “주여, 당신이 부르시면 저는 언제라도 기꺼이 따르겠나이다. 다만 그게 오늘밤이 아니기를 비옵니다”라는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영화 <버킷리스트>가 일깨운 진실은 죽음을 부정하는 존재인 사람은 죽음이 눈앞에 오면 앞으로 절대 오지 않을 미래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시간의 질적 부피를 늘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버킷 리스트’ 유행이 지나간 자리를 최근엔 ‘지금 여기’의 생각이 채우고 있다. 인생의 목표와 할 일을 미리 정하는 대신 현재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알아차리는 이 사고방식은 불교적 명상에서 온 것이기도 하고, 책 <트렌드 2018코리아>에서 지적했듯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세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세대들은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까? 서른여덟 살의 나이에 전이성 유방암 선고를 받은 작가 니나 리그리는 마지막 책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에서 소멸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버킷리스트가 아니라 “하나의 밤을 견뎌 또 다른 밤을 맞이하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낸 날들”로 채워진 인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은주·한겨레신문 지역에디터석 기자

http://all100plan.com/2018-winter-yeol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