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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42세에 등단해 일본의 국민 작가가 된 마쓰모토 세이초

마쓰모토 세이초는 단순한 추리소설가를 넘어 일본 문학의 거인이자, 진정한 국민작가로 인정받았다. 살아 생전에 750여 권의 책을 썼고, 수필을 포함해서 약 1,500편의 작품을 남긴 괴물 작가로도 이름을 남겼다. 그가 첫 소설을 발표했을 때 나이는 42세였다.

신문사 기자의 꿈이 좌절되다

작가가 되기 전까지 세이초는 신문사의 기자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아사히 신문사의 인쇄공으로 일하면서 갖게 된 꿈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독서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그가 신문사의 기자가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노점상을 하던 부모님을 포함해 아내와 자녀까지 그에게는 모두 8명의 부양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짐이 있었다. 
게다가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1950년대 초반은 패전의 여파로 경제 상황이 좋지 못했다. 물가는 치솟고, 기초적인 생필품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가 닥치는 대로 돈을 벌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글을 쓰고 작가가 된다는 꿈은 사치스러운 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월급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지자 빗자루를 판매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빗자루를 만드는 데는 특별히 돈이 들지 않았다. 산이나 들에 가서 흔한 싸리나무와 수수대를 엮어서 빗자루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빗자루는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문제는 많은 빗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깨 위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빗자루를 들고 기차로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빗자루를 판매하는 것이 쉬운 일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빗자루 판매는 그에게 예상치 못했던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바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낯선 도시들을 방문하면서 세이초는 남들이 모르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그가 훗날 수많은 소설을 쓸 수 있는 거대한 토양이 되었다.

42세부터 소설가의 길을 걷다

소설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역사는 1951년부터 극적으로 펼쳐진다. 
〈주간 아사히〉에서 ‘백만 인의 소설’을 공모했는데, 응모를 결심한 세이초는 출퇴근 시간에 걸어 다니면서 줄거리를 구상하고, 더운 여름에 모기장 속에서 원고를 써나갔다. 그의 데뷔작 ‘사이고사쓰’는 공모전에 응모한 총 992편 중에서 3등으로 뽑혔다. 원래는 더 높은 등수였는데 같은 아사히 신문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밀려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 속에서 묵묵히 문학의 꿈을 키워온 세이초의 세계가 열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때부터 세이초는 신문사 생활 외에는 작품을 쓰는 데 모든 시간을 바쳤고, 1952년 미타문학에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을 발표했다. 비록 재능은 있지만 고단한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주인공 고사쿠는 세이초 자신의 초상이기도 했다. 이 소설은 대중 소설을 시상하는 나오키상에 후보로 올랐지만 낙선한다. 그러나 당시 나오키상 심사위원이었던 나가이 다쓰오에 의해 “이 작품은 나오키상이 아니라 아쿠타가와상에 더 적합한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고, 후에 순수문학을 시상하는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를 계기로 47세에 과감하게 아사히 신문사를 퇴직하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1956년에는 23편, 1957년에는 33편의 작품을 쓸 정도로 창작력에 불이 붙으면서 ‘공부하면서 쓰고, 쓰면서 공부한다’는 각오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이초는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원래 탐정소설을 좋아했던 세이초가 인간성이 드러나는 탐정소설을 읽고 싶다는 평소의 꿈을 직접 실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58년에 출간한 첫 장편소설 ‘점과 선’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추리소설 작가로의 위상을 확실히 다지게 된다. 또한 이 소설로 트릭이나 범죄에 매달리기보다는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드러냄으로써 인간성의 문제를 파고드는 ‘사회파 추리소설’ 붐을 일으킨다. 단순히 사건 해결에 그치지 않고, 일상의 삶을 묘사하면서 사회의 어두운 면과 인간의 악을 그려낸 새로운 문학이 탄생한 것이다. 

사망할 때까지 글 쓰는 데 전력투구

“전력투구, 시간이 없어. 너무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시간이 없어.”
다른 작가들보다 출발은 조금 늦었지만 그래서 그는 작품을 쓰는 데 지치지 않았다. 대중들이 세이초에게 거장이라는 호칭을 붙여준 것은 그가 수준 높은 작품을 동시에, 대량으로 집필하는 엄청난 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이 지닌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1960년대 베스트셀러 목록을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그의 소설 작품들은 해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대중적인 인기는 그대로 영화나 드라마로 이어졌다. 모두 36편의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었고, TV 드라마로 제작된 것은 436편에 달한다. 
보편적인 주제로 인간을 묘사하고, 역사와 사회의 어둠을 파헤치려 했던 세이초의 작품 활동은 1992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됐다. 끊임없는 공부와 불굴의 정신력으로 자신을 채찍질했던 세이초였기 때문에 소설, 논픽션, 수필 등으로 창작 세계를 계속 확장할 수 있었다. 
꿈을 향해 도전하고, 성공의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젊은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성공의 가능성이 언제나 나이를 초월해서 열려있다는 믿음, 그것이 마쓰모토 세이초가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이었을 것이다. 힘든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 마쓰모토 세이초는 주도면밀하게 미래를 준비했고, 전략적으로 노년의 시간과 맞섰다. 

김대근·NH농협은행 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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