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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정중동 망중한, 휴가의 방식

정중동(靜中動), 망중한(忙中閑).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바쁜 가운데 한가로움이 있다. 휴가철이 다가오면 저마다 휴가를 즐길 계획을 짤 것이고, 그에 적합한 휴가지를 찾아 나설 것이다. 흔하기로는 바다와 계곡이겠지만, 그냥 피서로는 뭔가 밋밋하다. 이왕에 조용히 지내기로 한 바에는 하품이 날 정도로 한가롭게 지내거나, 기왕에 활기차게 보내기로 할 바에는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재미에 빠져들 수 있는 곳을 한번 찾아보자.

하늘 내린 물줄기 인제 내린천

래프팅은 인간의 원시에서 비롯했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뗏목을 물에 띄워 수렵과 이동의 방편으로 삼았다. 그것은 때로 미지의 땅을 찾아나서는 개척의 도구이기도 했고, 목숨을 건 삶의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삶의 고난은 사라지고 스릴과 재미를 즐기는 유희만이 남았다. 
우리나라에 래프팅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70년대 초 미군용 고무보트가 보급되면서부터. 그러나 장비 부족에다 적절한 코스가 개발되지 않아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 즐기는 동호인만 몇몇 있었을 뿐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속속 생겨난 동호인 클럽과 대학 동아리들을 중심으로 보급에 앞장선 데다, 레저스포츠 업체들이 본격적인 레포츠 종목으로 개발에 나서면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래프팅이 여름 레포츠로 활황을 누리면서 많은 폐단도 불러왔다. 물 맑고 경관 좋은 강들이 떼를 지어 몰려드는 래프팅객들로 몸살을 앓았고, 강 주변은 난립한 업소와 행락객들로 뒤엉켜 단숨에 무분별한 유흥지로 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래프팅은 여러 사람이 호흡을 맞춰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하므로 협동심을 기를 수 있고, 거센 물결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인내심과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미덕도 있다. 어떻게 즐기느냐의 문제이지 즐기는 것이 어찌 잘못일까.
‘하늘이 내린 물줄기’라는 강원 인제의 내린천은 래프팅을 비롯해 번지점프, 산악자전거, 모터사이클, 패러글라이딩 등 한여름 레포츠의 천국이다. 뿐만 아니라 합강정에서 거슬러 올라 을수골에 이르는 70여㎞의 긴 물줄기는 어디나 천혜의 물놀이 터이며 천렵의 명소다. 거기에 미산계곡과 살둔산장 등에서 맛볼 수 있는 강마을의 정취는 ‘가장 한국적인 강’이라는 내린천이 주는 푸근한 덤이다. 그래도 역시 래프팅이 내린천 레포츠의 꽃이다. 아니 내린천이야말로 래프팅의 최적지다. 맑은 물과 풍부한 수량, 계곡의 뛰어난 풍치, 다양한 난이도의 급류코스 등 본격적인 래프팅을 즐기기에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대부분의 래프팅은 고사리 원대교에서 시작되며, 밤골 쉼터까지 8㎞ 구간에 3시간이 소요된다. 

내 마음의 덕적도 옹진 덕적도

어여 가라/ 잃었던 것 되찾으러 뱃길 세 시간/ 해발 제로의 길/ 작게 흔들려도 몸 전체가 흔들리는 배를 타고/ 아침 일찍 어여 가야 하니/ 등은 달빛이 두드려 주고 있으니/ 야속하다 말고/ 되찾을 것 있는 너는 어여어여 가라하고/ 고욤나무 아래 서서/ 오래 바라다본 달빛 푸른 바다/ 잃었던 것 되찾는 황홀함/ 무엇이 있었단 말인가 내겐/ 무엇이 있을 거란 말인가/ 찬 들국 향이여/ 내 마음의 덕적도는 어디에 있는가 -함민복 ‘한밤의 덕적도’ 중에서 함민복 시인은 강화도에 산다. 어느 날 아랫집 동생이 찾아와 저번 사릿발에 떠내려간 자기 배가 열흘 만에 덕적도에서 발견되었다고, 날이 새면 덕적도로 배를 찾으러 간다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배를 찾은 기쁨에 거나하게 취한 동생은 시인에게 등을 두드려 달라고 성화다. 
그런 동생을 보며 시인은 마냥 부럽기만 하다.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내게는 되찾을 그 무엇이 있단 말인가.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덕적도 가는 카페리에 차를 얹을 때, 문득 시인의 부러움이 떠오른다. 나는 덕적도에서 무엇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 거기 내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 있기는 할 것인가. 대부도에서 배를 타면 자월도 거쳐 덕적도까지는 1시간 50분 거리.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배가 파도를 헤쳐 가는 내내 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덕적도 진리 도우선착장에 차를 내렸을 때 우선 이방의 코를 적시는 건 바닷내음보다는 솔향이다. 그것은 묘한 안온함을 준다. 덕적도가 덕적군도에서는 가장 큰 섬이고, 한때 연평도 조기잡이의 전진기지로 호황을 누렸던 곳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어업이 쇠퇴하면서 섬은 마치 한적한 휴양지의 모습을 닮아 있다. 선착장이 끝나기 무섭게 나타나는 나무데크부터가 그렇다. 거기서부터 덕적 앞바다를 바라보며 해안산책로를 걷다보면 이윽고 아늑한 노송군락이 펼쳐진다.
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휘 돌아볼 수도 있지만 덕적도의 진면목을 보려면 아무래도 비조봉과 국수봉으로 이어지는 섬 트레킹 코스를 밟아야 한다. 비조봉 정상의 비조정에 서면 발아래 문갑도며 선갑도, 각흘도, 백야도까지 30여 개 덕적군도의 섬들이 올망졸망하다. 산을 내려가면 서포리해수욕장이고, 길을 더하면 능동자갈마당이며, 바닷길로 길을 되돌리면 밭지름해수욕장이다. 밭지름과 서포리의 하얀 모래밭이거나 능동의 검은 자갈밭이거나 덕적도의 바닷가는 하나같이 아늑하다. 
Tip1

나는야 이카루스의 후예 문경 활공랜드

물길을 달렸다면 이젠 하늘을 한번 날아보자.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오랜 열망은 밀랍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날았다는 이카루스의 신화를 낳기도 했지만, 패러글라이딩은 하늘을 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것은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것과 달리 3차원 공간을 움직이는 운동이므로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많은 연습이 필요하며 따르는 위험도 작지 않다. 
경북 문경의 활공랜드는 패러글라이딩을 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 국내 정상급 활공장이다. 이륙장에 서면 문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지형이 분지 형태를 이뤄 상승기류 형성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풍향이 서북풍으로 안정적 기류가 유지되는 장점도 있다. 또한 주변에 고압선 등 위험 시설이 전혀 없어 안전하게 활공을 즐길 수 있다.
문경활공랜드 일대는 주흘산, 주령산, 포함산, 대미산, 백화산 등 백두대간의 줄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가까이 문경온천이 있어 활공 후 쌓인 피로를 풀 수 있으며, 문경새재 트레킹이나 진남교반 레일바이크 체험을 겸할 수도 있다. 하늘재 가는 길의 관음리도 빼놓을 수 없다. 관음리는 조선시대 사기 가마터가 있던 곳이다. 지금도 관음요를 비롯한 전통 가마들이 있어 고요함 속에 맹렬한 불꽃을 태우고 있다.
Tip2

한적한 바다가 주는 선물 태안 꾸지나무골

충남 태안에서 603번 지방도로를 타고 20㎞ 넘게 달리면 이원반도의 끝자락 만대에 이른다. 가로림만을 사이에 두고 서산 대산의 벌말과 마주하고 있는 만대마을은 호젓한 포구와 염전들로 갯마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옛날 한 풍수쟁이가 ‘세기말에 가서는 많은 사람이 사는 풍요로운 마을이 될 것’이라고 마을 이름을 ‘만대’라 했다지만 세기말을 훨씬 넘긴 지금까지도 여전히 20여 가구를 넘지 못하는 오지마을일 뿐이다.만대에서 다시 온 길을 거슬러 내려오면 꾸지나무골이 나온다. 작고 아담한 해변가의 꾸지나무골은 ‘아늑하고 정겹다’는 표현이 더없이 어울리는 곳이다. 하루에 버스가 대여섯 번밖에 다니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꾸지나무골은 그래서 아는 사람만 다시 찾는 숨겨진 해수욕장이다. 1㎞가 채 넘지 않는 백사장은 태고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해변을 둘러싼 송림은 야영장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꾸지나무골 남쪽으로는 학암포를 넘어 신두리의 해안사구로 이어지며, 천리포·만리포로 유명한 소원반도에는 원시 어로의 면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의항리 독살이 있다. 또한 파도리의 해옥이나 낭금의 자염 생산지 등 태안 해안의 곳곳에는 자연과 사람의 삶이 빚어놓은 흔적들이 오롯이 박혀있다. 이원의 밀국낙지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글·사진 유성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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