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외

고령사회의 신산업 ‘유품재생 비즈니스’

수명은 늘었지만 가족은 줄었다. 그러면서 생긴 틈새시장이 바로 일본의 ‘유품재생 비즈니스’다. 집 한 채 분량의 유품 앞에 어찌할 줄 모르는 유가족을 돕는 ‘유품정리’ 서비스는 물론, 인생의 마지막을 미리 준비하려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생전정리’ 서비스도 급부상하고 있다.
고령사회엔 그에 걸맞은 새로운 사업모델이 부각된다. 대표적인 것이 ‘유품재생’ 아이디어다. 최근 일본에서 신산업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NHK에서는 수출 아이템으로까지 보도했다. 일본에선 2017년 134만명이 사망했다. 초고령사회를 훨씬 넘긴 다사(多死)사회의 한 단면이다. 시신호텔(Corpse Hotel), 유품정리, 셀프장례 등 이른바 ‘죽음산업’이 부각되는 배경이다. 

고령사회+핵가족이 만든 틈새시장

최근 유행하는 슈카츠(終活·인생의 마지막을 위한 다양한 준비 활동)만 해도 연간 50조엔대 시장이다. 특히 유품재생은 단순한 정리·폐기를 넘어 재사용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유품이기에 처분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혁신적인 비즈니스로 손색없다. 
사망자는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유품 공급은 지속된다. 특히 대다수가 1인가구라 사망은 곧 집 한 채분의 유품 발생을 뜻한다. 보통 집 한 채당 유품 총량은 3톤에 이르는데, 가뜩이나 황망한 유족으로선 유품 처분이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버리자니 아깝고 팔자니 찜찜할뿐더러 방법조차 생소하다. 유품재생이 성공한 배경이다. 의뢰 건수가 증가하면서 최근엔 해외시장까지 생겨났다. 일본제라면 중고라도 고품질로 인정받기에 개도국에서 믿고 찾는 까닭이다. 
시장도 밝다. 나이 들수록 물욕이 준다지만 생활 유지를 위한 필수품까지 줄일 수는 없다. 특히 일본은 사계절이 뚜렷하기에 한 철만 쓸 것이라도 갖춰야 할 용품이 수두룩하다. 더구나 슈카츠를 미리 준비하느라 물건을 줄여나가는 중장년 자녀 세대에게 부모의 유품 상속은 만만찮은 과제다. 추억이 깃든 최소품목을 빼면 처분하는 게 현실적이다. 
이 같은 유품 재활용 시장은 3조 1,000억엔대에 이르고, 광의의 재활용까지 포함하면 7조 6,000억엔대로 추산된다. 문제도 많다. 비용이나 작업 내용과 관련된 분쟁이 대표적이다. 소비자 문제를 다루는 국민생활센터가 2018년 7월 “유품정리 서비스 의뢰 때 계약 내용을 각별히 확인하고 신중하게 고를 것”을 권고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는 증가세다. 특히 핵가족이 일반화되면서 유품정리가 틈새시장이 됐다. 한편에선 유품을 인수할 사람이 없어 쓰레기로 처분하는데, 다른 한편에선 이조차 아쉬운 사람도 넘쳐나는 것. 예컨대 청년층의 경우 1인가구로 독립하면서 모든 일상품을 새로 구입하기엔 경제력이 부족하다. 중고품에 대한 인식 변화도 관련 있다. 한 설문조사 결과 47.5%가 “중고품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답했으며, 연령이 낮을수록 그 비율이 높았다.

홀로 죽는 세상, 마지막 준비도 내 손으로

조금 다른 수요도 있다. 생전에 본인 스스로 물건을 줄이려는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유품정리가 아닌 ‘생전정리’가 사업모델로 떠오른 이유다. 시간을 갖고 본인의 유품을 정리한다는 점에서 사후정리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 중고품 사이트 메루카리(Mercari)에 유품 후보를 내걸어 재활용을 시도하는 경우가 그렇다. 회사에 따르면 이 같은 생전정리 사례는 최근 2년새 2.5배 늘었다. 
생전정리를 상담·지원하는 ‘생전정리 진단사’도 생겨났다. 이들은 고객의 집을 방문해 제품의 특징과 고객의 의향 등을 상담한 후 최종적인 용도를 조언해준다. 단순 판매뿐 아니라 기부 등 사회공헌적 대안도 제안하며, ‘버린다’는 말보다 ‘손에서 놓아준다’는 말을 쓰는 등 미묘한 단어 사용을 통해 고객이 결단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준다. 업계에 따르면 상담부터 최종 완료까지 2층 단독주택 기준으로 20만~100만엔 정도가 든다. 2011년 자격증 도입 후 현재 2만명의 정리사가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품정리업자는 유품을 조사한 후 폐기용과 판매용으로 구분한다. 낡았지만 재사용이 가능한 식기나 조리기구는 재활용하며, 전통가구 등의 골동품은 고가로 매입하기도 한다. 버리는 데도 돈이 들기에 유족도 업자도 최대한 재활용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일부는 해외로 나간다. 풍족한 생활을 원하지만 신제품은 비싸서 고민인 개도국 가정의 경우, 검증받은 일제 중고품은 좋은 대안이 된다. 일례로 필리핀에 일본 유품을 수출하는 한 업체는 경매 형태로 판매하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경락값이 높아지는 추세다. 일부는 원 소유자로부터 장기간 품질을 확인받은 일제란 점에서 신품보다 부가가치를 더 쳐주는 일까지 발생한다. 
컬렉션업계에서도 이 분야에 관심이 각별하다. 숱한 유품 속에 진귀한 희소품이 포함돼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일부 업체는 소유주가 사망한 후 무관심 속에 버려질지 모르는 희귀 장난감 등 마니아 제품을 발굴하고자 새로운 서비스에 나섰다. 수집품 사진을 찍어 전문가에게 보내면 조사·감정은 물론 평가액을 담은 견적서를 보내준다. 이 견적서를 유서와 함께 보관하면 소유주 사망 이후에도 희귀품이 사라지는 불상사가 방지된다. 가치를 알고 즐기기에 생전에 미리 처리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사후 폐기는 막는다는 점에서 업계도 고객도 반가운 일이다. 
한국에도 다사사회가 임박했다. 결혼식장의 폐업과 장례식장의 개업은 이제 일상적이다. 일본의 유품재생 비즈니스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전영수·한양대학교 교수

http://all100plan.com/2019-summer-yeol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