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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삶을 가르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칠곡 가시나들>

지금까지 김재환 감독은 항상 두 겹의 영화를 만들어온 사람이다. 데뷔작인 <트루맛쇼>(2011)에서 그는 티브이에 나오는 유명 맛집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식당을 차렸다. 식당 안에 설치한 카메라를 통해 관객들은 돈을 내고 맛집으로 소개되는 주방의 비밀과 맛집을 소개한다며 장사를 하는 방송사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티브이가 소개한 맛집이라면 일단 줄을 서고 과연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우리들 자신의 얇은 혓바닥을 보게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07년 대선 출마 당시 모습을 담은 (2012)에선 정치판에서 노골적으로 장사하는 MB의 코믹한 행적을 다루지만 동시에 MB가 보기엔 우리들은 어떤 사람이었을지 질문을 던진다.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을 다룬 <쿼바디스>(2014)에선 대형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누구의 책임인지 묻는다.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 뒤 개봉한 <미스 프레지던트>(2017)에선 새마을운동 역군들이었던 태극기 노인들의 한가운데 들어가 영화를 만들었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에 맞춰 한국사회를 움직여온 ‘박정희주의’를 몇몇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데 반대하는 영화가 개봉하자 진보와 보수 모두 이 영화에 대해 큰 거부감을 보였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고발해온 감독의 영화는 개봉 때마다 항상 논란과 여러 층의 적들을 만든 문제작들이었다. 
그런데 지난 2월 개봉한 김재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칠곡 가시나들>은 감독의 영화 중에서 처음으로 어떠한 이중적인 시선도 없는 투명한 영화다. 경북 칠곡군 양목면에 사는 8명의 할머니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이 할머니들의 삶에 한 점 우울이나 회의도 허락하지 않으면서 밝게만 달려간다. 

글자를 아니까 사는 게 더 재밌다

박금분, 곽두조, 강금연, 안윤선, 박월선, 김두선, 이원순, 박복형 할머니. 이들 할머니들은 마을에 한글학교가 생기면서 학생이 됐다. 80을 넘긴 나이에서 배움을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글을 배운 할머니가 직접 쓴 대답은 단순명쾌하다.  
“마을에 한글학교가 생겼다. 글자를 아니까 사는 게 더 재밌다.” 
한글을 배우고 나니 세상은 한 겹 껍질을 벗었다. 그전까지는 그림이나 마찬가지였던 마을 식당 간판들을 읽어보고 공원 운동기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사용설명서도 직접 읽을 수 있다. 자신이 사는 집주소를 처음 적어본다. 늘 보고 만지고 이름을 부르면서도 어떻게 쓰는지는 몰랐던 앵두, 매실 같은 열매들의 이름을 조심조심 써내려간다. 글의 세계로 건너온 할머니들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일까? 익숙한 세계가 새로운 형상으로 바뀐 경험을 할머니들은 시로 써내려간다. 
70년 넘게 칼국수를 밀었다는 강금연 할머니는 이런 시를 썼다. “국수 밀듯이 공부를 했으면 선생할긴데, 끝." 등개댁이라고 불리던 곽두조 할머니의 시는 좀 더 길지만 솔직하고 시원시원하기는 마찬가지다. “80넘어가/공부할라카이/보고도라서이(보고 돌아서면)/이차뿌고(잊어버리고)/눈뜨만/이자뿐다(잊어버린다)/아들 둘 딸 둘/다 키았는데(다 키웠는데)/그세월 쪼매 잘아랐으면/조았을 거로(좋았을걸)/우리 며느리가 공부한다꼬/자꼬 하라칸다/시어마이 똑똑 하라꼬/자꾸 하라칸다/하라카는게 고맙다.” 
올해 아흔이 된 박금분 할머니는 이렇게 노래한다. “가마이 보니까/시가 참 만타/여기도 시/저기도 시/시가 천지삐까리다.”

시가 천지삐까리다

뭐니뭐니해도 시를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수줍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선 박월선 할머니는 직접 쓴 <사랑>이라는 시를 낭독한다. “사랑이라카이 부끄럽따/나 사랑도 모르고 사라따/절믈때는 쪼매 사랑해주대/그래도 뽀뽀는 안해 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4남매를 혼자 키워낸 곽두조 할머니는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꿈을 쑥스럽게 시로 꺼낸다. “어릴 때 가수했으면 좋았을걸, 끝.” 
강금연 할머니는 글을 배운 기념으로 아들에게 한 편의 시와도 같은 편지를 썼다. “아들아/내 아들 나가(네가)/시끈 물도 아내들빼리라 캐다(씻은 물도 안내버리려고 했다)/그 아들노코 얼마나 조안는데(그 아들을 낳고 얼마나 좋았는데)/이제 그아들하태 미아하다(이제 그아들한테 미안하다)/내몸따가성하지를모타이(내 몸뚱이가 성하지를 못하니)/아들미는리욕빈다(아들 며느리 고생시킨다)/자나깨나 걱정해주는/아들이 참 고맙다/밥잘무라/어미시다(밥 잘먹어라 엄마다).”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의 편지를 받은 아들도 어머니에게 눈물 섞인 답장을 보낸다. 글로 주고 받는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는 한편의 시와도 같다. 
뿐만 아니다. 낙동강 하구 작은 마을에 살면서 얼음 녹는 봄을 맞고 붕붕거리는 벌들 못지않게 지팡이를 짚고 동네를 쏘다니며 분주하게 깔깔거리는 할머니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도 한 편의 시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만 꾸고 살던 곽두조 할머니가 87살에 용기를 내서 노래자랑 예선무대에 서는 모습도 아름다운 시다. 장독대에 떨어지는 비처럼 영화는 아름답고 잔잔하다. 

누가 노년을 두려워하랴

그러나 이 시는 알고 보면 기이한 곳에서 태어났다. 마을은 할머니들과 함께 나이들고 쇠약해졌다. 할머니들 중 누군가는 항상 병원신세를 져야 한다. 개 짖는 소리도 없이 조용한 밤이면 티브이를 벗삼아 홀로 잠드는 할머니들은 ‘무덤 속이 이렇게 캄캄하지 않을까’하며 왈칵 무서워지지 않을까. 
역사가 윌 듀런트는 “우리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우리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사랑하는 우리는 우리의 또 다른 자아인 노년에 대해선 혐오하고 부정한다. 고장난 육신에 묶인 존재, “학살을 기다리는 신세”(필립 로스), “변화하는 세계 속에 유배된 이방인”(시몬느 드 보부아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인들은 자신들 속에 청춘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청춘들은 자신들 안에 이미 노년의 존재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아무도 늙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에 경악한 싯다르타는 출가를 결심하지 않았나. 우리가 현재의 삶을 사랑하면 할수록 늙음에 대해, 죽음에 대해 속수무책인 노인들은 우리 앞날에 대한 절망적인 예고편처럼 여겨진다. 요즘 우리 사회는 탄로(늙어감을 개탄함)에서 혐로(늙어감을 혐오함)로 방향을 바꿨다. 여성, 동성애자 등 약자를 혐오하는 것과 달리 노인혐오에는 차별보다는 공포의 감정이 더 크다. 무기력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도 영화에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고통과 외로움, 무기력에 시달리는 칠곡 할머니들의 삶이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할아버지는 모두 돌아가시고 자식들도 곁에 두지 않고 소주 한잔의 힘으로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삶은 의연하다. 일제강점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느라 한글 배울 기회조차 갖지 못했고, 전쟁터에서 돌아와 고된 노동을 치렀던 과거에 대한 회한도 내비치지 않는다. 칠곡 할머니들에겐 우리가 노인에게 덮어씌웠던 편협하고 무기력하게 지금에 안주하면서도 자기 연민에 가득한 존재라는 모습을 찾아볼 길이 없다. 우리가 늙으면 육체가 겪게 될 고통에 대한 불안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 소설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오십까지는 이렇게 가겠지. 그뒤는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영화 <칠곡가시나들>의 주인공 박금분 할머니가 <내마음>이란 시로 젊은이들의 질문에 답한다. “빨리 죽어야 데는데/쉽게 죽지도 안하고 참 죽겠네/몸이 아프면 빨리 죽어야지 시푸고/재밌게 놀 때는 또 살아야지 시푸다/내 마음이 이래/와따가따 한다” 몇 살이 되든 우리는 그때그때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세계를 받아 들이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남은주·<한겨레> 전국부 기자
사진 인디플러그, 더피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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