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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청계천의 북쪽, 경복궁의 서쪽 – 북촌과 서촌

서울은 정도(定都) 600년의 역사만큼이나 다양하고 유서 깊은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어서 여행지로서도 손색이 없다. 교통이 편리하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것도 여행지로서 서울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특히 서울의 전통적인 모습을 가장 잘 보전하고 있는 북촌이나, 최근 서울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서촌은 서울의 역사와 함께 생활변천사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최적의 답사코스가 된다.

가장 오래된 서울, 북촌

가회동 31번지길에서 내려다본 북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기와집 지붕들이 금방이라도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놓을 듯하다. 멀리 보이는 초록박공집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이준구가옥으로, 1991년 서울시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서촌의 한옥들은 1910년대 이후 주택계획에 의해 지어진 이른바 개량한옥이 대부분이다. 홍건익가옥은 자연지형을 살려 건물을 앉힌 실용적 구조와 함께 서울에 남아있는 한옥 중 보기 드문 규모로 근대시기 한옥의 특징을 보여 주는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시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북촌 조망의 압권은 단연 가회동 31번지길(북촌로 11길)에서 보는 풍경이다. 조붓한 골목길로 올라서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기와집 지붕들이 잇달아 펼쳐지며 금방이라도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듯하다. 그 기와지붕 위로 눈이라도 내려 덮이면 마을은 단숨에 수묵화가 된다. 하지만 이제 그 조망을 즐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던 주민들이 담장을 높이 올리고 철조망까지 쳐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북촌한옥마을의 현실을 잘 드러낸다. 엄연히 실제 사람이 사는 거주지역이기 때문에 정주권과 주거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일부 ‘과도관광’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가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종로구에서는 북촌이 관광지이기 이전에 주민들의 생활공간임을 알리면서 ‘정숙관광’을 유도하고 있지만 뜻대로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북촌은 종로구 재동·가회동·삼청동 등에 걸쳐 있던 마을로, 청계천과 종로의 북쪽에 있는 동네인 데서 마을이름이 유래되었다. 예로부터 조선시대 왕족이나 고위관직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三色)이 섞여서 살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북촌이 권세 있는 양반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데 비해 남산 기슭을 중심으로 한 남촌은 소위 ‘남산골샌님’이라 불리는 관직에 오르지 못한 양반들과 하급관리, 상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남촌지역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게 되면서 조선인 중심 거주지역으로서의 ‘북촌’과 일본인 중심의 ‘남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원래 이 지역에는 솟을대문이 있는 집 몇 채와 30여 호의 한옥만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말부터 생활한옥이 많이 지어졌으며, 1992년 한옥보존지구에서 해제되고 1994년 고도제한이 풀리면서 일반 건물들도 많이 들어섰다. 현재 2,300여 동의 건물이 있는데, 이 가운데 1,400여 동이 한옥이고 나머지는 일반 건물이다. 한옥의 대부분이 팔각지붕을 한 기와집이며, 구조는 평면이 ‘ㄷ’이나 ‘ㅁ’ 모양으로 된 도시형 한옥이 많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 마당이 노출된 전통한옥과 달리 길에서 보면 높은 대문과 방으로 막혀 집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는 2000년대 들어 개축하지 않은 한옥들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한옥 개축을 장려하는 터에 최근 지은 한옥은 전형적인 도시한옥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서울을 찾는 여행객이라면 북촌의 게스트하우스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제격이다. 전통 부적과 민화를 전시하고 체험하는 가회박물관을 시작으로 자수박물관, 매듭박물관 등 한국 전통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장이 풍부하고, 오래된 식당과 현대적 카페테리아 공간이 함께하는 삼청동 거리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멋과 맛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대표적 전통문화 관광지인 인사동과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 광화문과 청계천 등 서울을 상징하는 곳들이 도보로 찾아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여 가장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서울여행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전통한옥을 활용한 북촌문화센터에서는 외국인을 포함한 방문자들을 위한 여행정보와 문화해설사의 북촌 안내가이드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여행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예로부터 많은 문인·예술가들이 거주해온 서촌

북촌전망대에서 바라본 경복궁 일원. 북촌지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북촌전망대는 사설시설로 유료이며, 입장료를 지불하면 음료 한 가지를 제공한다.

서촌을 비롯한 경복궁 일원에서 한복차림을 만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한복 착용의 경우 경복궁 입장료가 면제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한복을 착용한다. 젊은 세대를 비롯하여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한복과 친숙해질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통인시장은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불러 모으고 있다. 그 중 ‘도시락 카페’ 마켓은 큰 인기를 끌어 시장 곳곳이 도시락을 든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필운동의 홍건익가옥은 서촌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옛집이다. 조선시대 왕족과 사대부 집권세력의 주 거주지던 북촌과는 달리 서촌은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인 중인들이 주로 모여 살던 곳이다. 1930년대 이 집을 지은 홍건익도 사대부가 아닌 상인으로 알려져 있다. 홍건익 이전 토지 소유자 중 한 명인 고주는 역관이었다. 1914년 <매일신보>에는 ‘필운대에 사는 고주 씨가 빈민을 구제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그는 위항문학(委巷文學, 18세기 이후 중인계급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학)의 일파인 ‘육교시사(六橋詩社)’에 참여하기도 했다. ‘서촌’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서촌’이라 불린 곳은 서소문 일대여서 이곳을 ‘서촌’이라고 부를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역사학자 및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있어왔다. 이에 종로구 지명위원회는 2013년 이 지구의 공식 명칭을 '세종마을'로 의결했다. 그러나 2017년 한옥체험관을 '상촌재'라 명명하며 이 지구의 옛 이름이 '상촌(웃대)'이라고 밝혀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웃대'는 청계천 상류 전체를 뜻하는 지명이어서 이곳만을 가리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어쨌든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의 사이의 청운효자동, 사직동 일대를 일컫는 서촌은 근래 북촌에 버금가는 전통마을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가 인접한 탓에 개발의 혜택을 보지 못하다가 1990년대 말 건축규제가 완화되면서 빌라가 많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최근 다시 한옥 보존의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북촌이나 인사동과 같은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었다. 전통마을로서의 역사성에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통인시장의 ‘도시락 카페’ 마켓 등이 유명세를 타면서 새로운 도시관광지로 떠오르고 있지만, 반면 과도한 상업화와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시대 위항문학의 중심이기도 했던 서촌에는 그 연유 때문인지 예로부터 많은 문인·예술가들이 거주해왔다. 조선시대에는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근대에는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 윤동주와 이상 등이 서촌 주민이었다. 박노수 화백이 살던 집은 2013년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특히 ‘이상의 집’은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처음 보존재산으로 매입해 문화공간으로 개방한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비록 원래 이상이 살던 집은 헐리고 필지 일부에 새로 지은 집으로 밝혀져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가 해제하는 소동을 빚기는 했지만.
‘이상의 집’을 지나 누각길을 따라 걷다보면 옥인부동산 안쪽 골목에서 대오서점을 만난다. 1951년에 개점한 헌책방으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알려져 있다. 서점의 이름은 주인장 조대식·권오남 부부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온 것이라고 한다. 부부가 평생 이 작은 책방을 운영하면서 자식교육을 다 시켰다고 하니 책방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아이유의 ‘꽃갈피’ 앨범 자켓 촬지, 2013년 TV드라마 ‘상어’의 촬지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가게를 이어받은 다섯째 딸에 의해 헌책방의 외관은 그대로 유지한 채 리모델링하여 북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서촌의 맛집골목으로 유명한 통인시장은 1941년 일제에 의해 효자동 일대에 살고 있던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처음 개설된 공설시장이었다. 
당연히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에게 생활편의를 제공하려는 목적이 우선적’이었다. 개설 당시에는 지금의 통인시장 입구 북쪽 효자아파트 자리에 위치해 있었지만, 단층이 낡고 비좁아 1960년 후반 5층 건물로 재건축되었다. 현재 통인시장에서는 시장상인들이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정성이 가득 담긴 여러 가지 반찬으로 든든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도시락카페 통(通)’을 운영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장에서 개당 500원인 엽전을 구입하고, 이때 함께 주는 빈 도시락을 들고 시장 안을 돌아다니며 가맹점에서 엽전을 내고 반찬을 산다. 시장 전체가 거대한 ‘한식 뷔페’인 셈이다. 

글·사진 유성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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