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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61세에 홍산대첩으로 고려를 구한 최영

혼란스럽던 고려 말, 최영은 밖으로는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안으로는 고려 왕실을 지키려 한 명장군이자 재상이었다. 그가 홍산대첩으로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고려를 구했을 때의 나이는 61세였다.

30대 중반에 중앙 정계에 진출

최영은 1316년 고려 말 사헌부 간관을 지낸 최원직의 아들로 태어났다. 최영의 가문은 왕건의 고려 건국을 도운 철원 최씨 가문으로 고려의 유력 가문 중 하나였다. 최영은 어렸을 때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늠름했으며, 용력이 출중하여 문신 가문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병서를 읽고 무술을 익혀 무장의 길을 걸었다.
최영은 관직에 늦게 발을 들인 편이었다. 30대 중반이 되고서야 중앙 정계에 진출했는데 당시로는 상당히 늦은 나이였다. 그는 양광도 도순문사 휘하에서 수차례 왜구를 격파하면서 그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후 그는 1352년 공민왕을 압박하고 권세를 누리던 조일신을 제거하는데 공을 세우면서 그 공로로 중앙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고려 왕실의 해결사로서의 최영의 일생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최영은 원나라에 맞서 싸워 100여 년간 빼앗겼던 함경도 일대 쌍성총관부의 땅을 되찾는데 공을 세운다. 쌍성총관부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최영은 이자춘과 그의 아들 이성계를 만나게 된다. 그 후 최영은 이성계와 함께 북으로는 홍건적을, 남으로는 왜구를 막아내며 고려를 외침으로부터 지켜낸 대표적인 장군으로 활약하였다. 고려 말기의 왜구 침입은 규모와 피해 면에서 임진왜란에 비견할 정도였는데, 무려 수백 차례를 쳐들어왔다. 최영은 남부지방 해안에 창궐하는 왜구를 격파하여 왜구들의 공포 대상이 되었다. 

61세에 고려를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

또한 북쪽에서 침입한 홍건적을 물리치기도 했다. 당시 중국에서 일어난 홍건적은 이민족 왕조인 원나라의 지배를 타도하고자 일어난 농민 반란세력으로 원나라 군대에 밀려 고려에까지 침략해 들어왔다. 홍건적이 국경을 넘어와 서경까지 함락시키자 이방실 등과 함께 홍건적을 물리쳤고, 1361년에는 개경까지 점령한 홍건적을 격파하여 나라를 위기에서 구출하였다.
최영이 국외 세력의 침략에만 활약한 것은 아니었다. 최영은 국내에서 일어난 반란을 막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공민왕을 살해하려 한 김용의 흥왕사의 변을 진압하고, 공민왕의 반원정책에 위기를 느낀 원나라가 덕흥군을 왕으로 추대하여 보낸 군사 1만여 명을 의주에서 섬멸하였다. 또한 제주도에서 일어난 목호의 난까지 평정하여 한반도 전역에 그의 활약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1376년에는 왜구가 충청도 일대에서 기승을 부리자 출전을 자원해서 홍산(현재의 부여)에서 직접 선봉에 서서 왜구를 크게 물리쳤다. 이를 홍산대첩이라 하여 이성계의 황산대첩 등과 함께 왜구를 상대로 한 큰 승리로 꼽힌다. 이 승리로 최영은 철원부원군에 봉해졌다. 공민왕 사후 조정에서 요직을 겸직하게 되면서 이인임과 함께 우왕을 보좌하게 된다. 그리고 1388년에는 전횡을 일삼던 이인임 일파를 정리하고, 이성계와 함께 재상에 올라 고려 정계에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풀이 나지 않는 무덤의 주인공

1388년 최영은 이성계에게 요동 정벌을 명하였으나 원치 않는 전쟁 길에 올랐던 이성계는 왕명을 거역하고 결국 군대를 회군시켰다. 이것이 바로 고려와 최영의 운명을 완전히 침몰시킨 위화도 회군이다. 돌연한 사태 변화에 최영은 급히 개경에서 이성계의 군대와 싸우려 했으나 이미 대부분의 군사를 이성계에게 내어준 상황에서 최영은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최영이 보호하던 우왕은 강화도로 쫓겨났고, 최영은 유배되었다가 결국 참수형에 처해졌다. 최영이 세상을 떠난 날 백성들은 크게 슬퍼했다. 거리의 아이와 부녀자들까지 모두 눈물을 흘렸으며, 개경의 상인들은 모두 가게 문을 닫아 이성계 세력에 대한 무언의 항의를 표시했다.
그는 유언으로 “만약 내가 평생 동안 한 번이라도 사사로운 욕심을 품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최영의 무덤은 풀이 자라지 않다가 1976년부터 풀이 나기 시작했다. 최영은 40년간 외침으로부터 고려를 지켜내고, 왕실의 존립을 위해 한 몸을 바쳤다. 고려사 최영 열전에 따르면 참전한 모든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패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또한 장군과 재상을 겸했으나 청탁이나 뇌물사건에 휩쓸린 경우도 없었다. 그리고 최영이 죽고 얼마 후 고려의 운명도 끝나고 말았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늙었다는 생각만큼 인간을 늙게 만드는 것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새로운 정보와 새로운 자극을 통해 인식이 바뀐다. 새로운 자극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지배하는 두뇌가 새로운 작동을 시작한다. 최영의 경우가 그랬다. 고려 말기 외적의 침입과 정치적 혼란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최영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위기가 가져다 준 새로운 상황과 자극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그 결과 그는 노년이 되어서도 정력적인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마음과 정신이 늙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최영처럼 노년기에도 정력적인 활동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의사협회가 작성한 연구 보고서에는 노화의 원인 중에서 가장 첫 번째가 바로 ‘늙는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지적을 했다. 보고서는 덧붙여서 ‘마음과 육체에 유해한, 노화에 영향을 주는 것은 시간에 대한 공포’일 뿐, 늙어가는 시간 자체가 아니라고 밝혔다. 신경증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자체가 바로 늙는 것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결국 우리는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늙어간다.  

김대근 NH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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