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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불안과 두려움은 다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두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불안과 두려움이죠. 우리의 삶을 좀먹는 이들을 어떻게 하면 떼어낼 수 있을까요? 불안을 두려움으로 바꾸면 이 둘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영희 씨는 딸의 문제로 상담실에 찾아왔습니다. 딸이 학교에서 반 친구를 공격한다고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고, 잘 아는 친구의 어머니는 영희 씨 딸이 자기 딸을 놀려서 힘들다고 전화로 호소했으며, 학원 선생님은 딸이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더 이상 못 가르치겠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영희 씨는 딸을 야단치고 주의를 주었지만 개선되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해 상담실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위협에 처하면 불안하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위협에 처하면 불안합니다(Bowen, 1985). 불안은 ‘분명하지 않고 초점이 없으며 신체적 자극을 동반하는 무서운 상태(케임브리지 사전, 2009)’입니다. 우리는 위협에 처하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숨이 가빠지고, 손에 땀이 나기도 하며, 어떤 때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숨이 멈춘 듯하고, 몸이 차가워지면서 그 자리에 얼어붙기도 하는 등 신체적 자극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확히 어떠한 위협 때문에 불안한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불안의 특성은 ‘모호함’이기에 불안을 다루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는 불안을 두려움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역사상 최초로 구분한 사람은 프로이트(Freud) 이전에 살았던 철학자인 키르케고르(Kierkegaard)입니다. 그는 “불안은 대상이 없으나 두려움은 구체적인 대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파울 틸리히(Paul Tillich)는 그의 유명한 저서 〈존재의 용기(The Courage to Be)〉에서 “두려움은 대상이 있기에 대상을 다룰 방도를 강구해서 존재를 보호하지만, 불안은 대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생물학적으로 보면 불안은 오히려 보호적이라기보다는 파괴적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안을 다루려면 불안을 두려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불안할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알아야 불안을 다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담실에 찾아온 영희 씨는 딸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왜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지 몰랐습니다. 영희 씨의 불안의 대상을 알기 위해 제가 물었습니다. “만약 딸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일까요?”라고요. 영희 씨의 불안을 두려움으로 만드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이성의 뇌를 사용해 불안에 대처하는 것

불안할 때 우리의 뇌는 세 가지 자동반사적 반응을 합니다. 도피(flight), 투쟁(fight), 얼어붙는(freezing) 반응이죠.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뇌의 편도체에서 도망가거나 싸우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도망갈 수도, 싸울 수도 없는 위급한 상황이 되면 간뇌는 인지적·생리적 반응을 대폭 축소시켜서 죽은 듯이 그 자리에 얼어붙게 해 현실에서 자신을 분리(disassociation)하도록 만듭니다. 대상이 없는 불안을 구체적 대상이 있는 두려움으로 만드는 작업은 인간에게 발달해 있는 이성의 뇌이며 생각의 뇌인 전두엽을 작동시킨다는 뜻입니다. 
뇌의 전두엽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만들어서 불안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게 합니다. 우리말 속담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절체절명의 위험 앞에서도 이성의 뇌인 전두엽을 사용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대처하면 살 수 있다는 것이죠.

불안은 내부의 두려움에 기인한다

영희 씨가 불안한 이유는 딸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딸이 ‘남에게 불편을 끼치는 존재’이며, 그렇게 딸을 키운 게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영희 씨 부모님은 남에게 불편을 끼치는 존재가 되지 말라고 교육했기에 ‘남이 불편하면 이는 무조건 나의 잘못’이라는 신념이 영희 씨 안에 형성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희 씨는 남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극도로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학교 담임이, 친구 어머니가 그리고 학원 선생님이 딸로 인해 불편하다고 영희 씨에게 호소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딸로 인해 불편하다면 무조건 딸의 잘못이며, 이는 부모인 자신이 딸을 잘못 양육해서라고 해석함으로써 불안했던 것입니다. 딸의 문제 행동이 아니라 영희 씨 내부에 있는 잘못된 죄책감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죠. 영희 씨처럼 자신의 불안을 두려움으로 만들면 불안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상담실에 오기 전 영희 씨는 자신이 왜 불안한지 알지 못해 자기 안에 있는 진짜 불안의 원인인 죄책감을 다루지 않고 계속 딸을 고치려 했던 것이었고, 그래서 영희 씨의 불안이 해결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불안의 대상을 알게 된 후 영희 씨는 딸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 영희 씨 딸은 문제아가 아니었습니다. 영희 씨가 딸 때문에 불편하다고 호소한 사람들 말만 믿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영희 씨는 상담을 통해 자신의 두려움을 다루었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딸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엄마의 지지를 얻은 딸은 급속도로 좋아졌고, 이로써 영희 씨의 불안은 해결됐습니다. 

한영혜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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