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꿈 대신 황금을 받고 싶어요 – 슬픔이 빛나는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시스터〉

아이들이 피해를 입은 사건을 보도한 기사 댓글을 보다 보면 “죄 없는 아이들은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염원을 만나게 된다. 세상의 여러 불행을 우리가 모두 막을 수는 없어도 가장 약자인 아이들은 지키자는 선한 마음들이다. 그런데 가끔 폭력의 가해자나 책임자는 아니고 단지 경제적 능력이 없을 뿐인 아이들의 부모가 함께 비난을 받기도 한다. 모든 성인은 자신의 불행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항상 옳은 말일까. 어떤 부모들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린이들만큼의능력도 지니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그들의 잘못이 대체 언제부터 누구한테서 시작됐는지도 가리기가 어렵다.
(※ 이 기사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법궁전에 사는 아이들

“퓨쳐랜드(미래의 땅)에 새 자동차가 들어왔대!” 션 베이커 감독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아이들이 이렇게 외치는 소리로 시작한다. 그들이 지금 사는 곳은 매직 캐슬(마법 궁전)이라는 이름의 모텔이고 퓨쳐랜드는 건너편 모텔 이름이다. 1971년 월트 디즈니는 플로리다주에 세계에서 가장 큰 디즈니월드를 지으면서 테마파크 주변에 생활 공동체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원래대로라면 디즈니 공동체가 세워졌어야 할 디즈니왕국 가장자리 모텔촌에 사는 어린이들의 삶을 그린다. 
‘미래의 땅’으로 간 아이들은 낯선 자동차에 침 뱉기 시합을 한다. 모텔의 전기 장치를 몰래 끄고 도망치는 게 이들의 신나는 모험이고 전직 스트립 댄서가 수영장에서 홀딱 벗고 일광욕하는 모습이 스펙터클 볼거리다. 디즈니 이용권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삶은 이렇듯 다르지만 영화 내내 아이들이 너무나 즐겁게, 게다가 서로 사랑하며 노는 바람에 우리는 잠깐씩 이게 얼마나 비교육적인지를 잊곤 한다. 
주인공인 6살 무니(브루클린 프린스)는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와 산다. 모텔촌 친구들은 대개가 엄마나 할머니와 산다. 모텔방은 집이라기엔 불완전한 것처럼 가족 또한 불완전하다. 트레일러나 모텔촌에 사는 사람들을 ‘숨은 노숙자’라고 부른다. 매주 방값을 벌지 못하면 진짜 노숙자가 될 아슬아슬한 처지의 이들이지만 영화 속 부모들은 있는 힘껏 아이들을 사랑하고 지키려고 애쓴다. 모텔 관리자인 바비(윌렘 대포)는 세입자를 단속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노리는 외부인을 막아내는, 말하자면 그 옛날 미 서부 개척시대의 보안관 같은 인물이다. 월트 디즈니의 공동체를 향한 꿈은 이렇게 이상한 모양으로 실현됐다. 

스키장의 유령들

위르실라 메이에 감독 영화 〈시스터〉에서는 12살 소년 시몽(케이시 모텔 클레인)이 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스위스의 스키 휴양지 아래에 사는 소년은 매일 곤돌라를 타고 스키장에 올라가 스키 장비나 옷가지 등을 닥치는 대로 훔쳐 번 돈을 누나 루이(레아 세이두)에게 쥐어준다. 시몽과 누나, 친구들은 아름다운 알프스 자락에 사는 어두운 그림자 같은 인생들이다. 
가난보다도 더 안 좋은 것은 시몽이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 동생이 훔쳐 온 돈으로 남자친구와 여행을 가는 누나 루이는 툭하면 그를 홀로 남겨둔다. 스키장 직원들은 그가 물건을 훔치는 것을 눈치챘지만 무심할 뿐이다. 마음 깊은 곳 늘 사람이 그리운 시몽은 스키장에서 만난 한 부인에게 엄마를 보는 듯 애착을 느끼지만 애정을 받아본 일이 없는 소년은 정상적으로 표현하지도 못한다. 급기야 누나가 가버릴 것이 두려운 시몽은 남자친구를 쫓아내기 위해 엄청난 비밀을 털어놓는다. “저는 동생이 아니라 아들이에요.” 15살에 버림받고 시몽을 혼자 낳았던 루이는 또 다른 남자에게 버림받은 뒤 아들에게 이렇게 내지른다. “넌 12년 동안 나를 옭아맨 족쇄야!”

우는 대신 욕을 해볼까

루이가 잘못하는 것은 맞지만 15살, 역시 어렸던 그에게 잘못했던 것은 또 누구였을까. 무엇보다도 루이와 시몽의 행복과 불행은 깊이 연결되어 있어서 영화는 후반부에 서로의 손을 놓지 못하는 그들을 비춘다. 루이가 행복해져야 시몽이 행복해진다. 
“나는 어른들이 울기 전에 어떤 얼굴을 하는지 알거든.” 〈플로리다 프로젝트〉 영화에서 무니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핼리가 예전에 울었다는 말인데 지금은 식당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향수를 팔러 다니다가 수위에게 쫓겨나도 세상에 욕을 퍼부었으면 퍼부었지 절대 딸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이 정말 어른의 슬픔과 고통을 모를까. “무지개 끝에는 황금이 있대!” 무니는 친구에게 속삭인다. 아이가 갖고 싶은 것은 동심의 무지개가 아니라 엄마를 달래주는 황금이다. 울지 않던 무니는 막판에 보건국 직원들이 엄마와 아이를 갈라 놓으려고 하자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을 터트린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왜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는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을까. 〈시스터〉에서 왜 남매가, 모자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을까. 어린 슬픔을 막으려면 불행한 어른들에게 손을 뻗을 수밖에 없다. 

남은주 〈한겨레〉 자유기고가
사진 〈플로리다 프로젝트〉 오드 제공, 〈시스터〉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http://all100plan.com/2021-autumn-yeol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