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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길 위에서 황혼을 보았네 – 떠도는 은퇴의 시대를 그린 <노매드랜드> 영화와 책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한 클로이 자오 감독 영화 <노매드랜드>는 집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실태를 보도한 책 <노마드랜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는 책과는 전혀 다른 서정을 창조해내면서 각색상 후보에도 올랐다.
책은 영화를 되짚게 하는 질문들을 던진다. 책과 영화를 함께 들여다보아야 할 이유다.

집을 버리는 사람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100만 명의 사람들이 집을 지니지 않고 자동차에서 산다.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자동차 생활자들은 실제론 수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원래 미국에선 극빈층인 트레일러족이 항상 있었지만 지금 늘어나는 트레일러족은 좀 다르다. 2000년 초반 금융권이 주택담보대출 파생상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집값이 치솟았다. “반려견 명의로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시절이었다. 거품이 일시에 꺼졌을 때 많은 사람이 집을 포기하고 저금을 털어 빚을 갚으려 했지만 그걸로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수많은 기업들이 줄도산하면서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많은 중산층들이 매니저에서 캐셔로, 교사에서 판매원으로, 저임금 노동자가 됐고 나이가 들면서 그나마도 찾지 못하게 된다. 급기야 전통적인 형태의 주거를 포기하고 승합차나 캠핑카, 스쿨버스에 살면서 임시 일자리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2011년 한 해만도 미국에서 120만 가구 주택이 압류되고 밴 판매량이 24% 늘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는 일자리를 따라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사는 사람들을 3년 동안 취재해 이 책을 썼다. 

모두들 어떻게 노년을 살아내는 걸까?

원래는 수확철을 따라 대륙을 종단하는 사람들을 계절노동자라고 불렀다. 요즘 가장 큰 농장은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업체인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주문이 쏟아지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휴가 때 이들 노마드 노동자들을 불러 모은다. 노령인구를 고용하면 정부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임금이 절반밖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윤의 논리도 있다. 60~70대인 노마드 노동자들은 아마존 주차장에 세워둔 밴에서 먹고 자면서 하루 12시간을 아마존 창고에서 일한다. 그리곤 계절 따라 버몬트에서 라즈베리를, 워싱턴에서 사과를 따고, 여름엔 양식장이나 국립공원에서 가이드를 하고, 큰 행사가 있을 땐 매점 판매나 경비를 선다 그러나 아무리 일해도 떠돌이 노동자들은 늘 가난하고 자동차 고장이나 작은 병만 나도 꼼짝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린다. 세계에서 가장 임금불평등이 심한 나라인 미국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은 아무리 일해도 돈을 모을 수가 없다. 영화에서 노마드 노동자들은 계속 묻는다.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도 계속 가난해. 도대체 다들 어떻게 노년을 살아내는 걸까?” 꼭 경제적 이유만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추억과 상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온 사람들도 있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것 같은 마음으로 길 위를 떠도는 이들은 다른 노마드들을 만날 때마다 “안녕”이라는 말 대신 “그곳에서 다시 만나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곳에서 다시 만나요

이제 이 이야기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 시작될 차례이다. 영화에서 노마드 노동자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밥 웰스는 자신들을 죽을 때까지 일하다 초원으로 쫓겨나는 말에 비유하면서 “우리 말들은 서로 돌봐야 한다”고 가르친다.
노마드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돕고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주며 노후라는 가장 두려운 협곡을 지나간다. 우리가 은퇴할 즈음에 경제위기가 닥친다면, 일터에서 쓸모가 다했다고 밀려났는데 돌아갈 집조차 없다면, 사람은 어떻게 자존을 지킬 것인가. 영화 <노매드랜드> 출연자들은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과 펀의 상대역인 데이비드(데이비드 스트라탄)를 빼면 나머지는 전부 실제 노마드들이다. 밥 웰스는 물론 노마드 노동자들의 근거지가 될 집을 지으려 하는 린다 메이, 암으로 죽게 되는 샬린 스웽키까지 실제 밴에서 사는 이들은 “우리는 홈리스(노숙자)가 아니라 하우스리스(집이 없는 사람)”라는 점을 강조한다. 누구에게 의존하거나 침해받지 않는 자립적인 생활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이들의 품위와 자부심은 이 영화의 제일가는 미장센이다.
아름다움의 또 한 축을 이루는 것은 내내 영화 속 배경이 되는 황혼이다. 영화는 내내 노을 지는 사막을 달리는데 황혼은 영화 속 사람들이 노년을 맞고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위대한 아메리카 드림이 저물고 세계적으로 성장의 시기가 끝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일단 집을 나서면 무기력한 노년은 없다. 펀은 거대한 고목을 안아보고 광폭한 바닷바람을 맞아보며 나날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이 영화는 경제위기로 쫓겨난 불쌍한 노동자들이나 시들어가는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노년의 전쟁터에서 자존하고 자애하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이다.  

남은주 〈한겨레〉 자유기고가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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