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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우 김수로 – “100세 시대에 은퇴가 따로 있나요?
인생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죠
“좋은 연극을 발견해 소개할 때 마치 산삼을 찾은 것 같은 기쁨을 느껴요. 그것이 제가 연극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죠.”
배우이자 공연 제작자인 김수로(52)는 ‘열정의 아이콘’답게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 5~6월 연극 〈돌아온다〉의 배우이자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그는 SBS 드라마 〈우리는 오늘부터〉에 출연했고 현재 tvN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촬영에 한창이다. 원로배우 이순재, 백일섭, 노주현 주연의 연극 〈아트〉의 제작도 맡았다. 여기에 대학 강의까지 ‘1인 다역’을 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의 중심에는 늘 연극이 자리 잡고 있다.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출신으로 공연 제작사 더블케이 필름앤씨어터 대표이기도 한 그는 매년 빼놓지 않고 연극 무대에 오른다. 그는 “연극 무대는 좋은 에너지를 주는 고향 같은 곳”이라고 말한다.
좋은 연극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무대에서 살아 있음 느껴요

“영화든 드라마든 새로운 연기를 계속 보여주려면 무대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 중요해요. 배우로서 늘 연기 훈련을 해야 되는데, 좋은 작품만 기다리다 보면 기약이 없으니 제작도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좋은 연극을 계속 알려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어요.” 연극은 모든 문화예술의 기본이지만, 상업적인 다른 장르에 비해 다소 주목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김수로는 “국영수를 위주로 공부해도 뿌리인 국사를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처럼, 연극이 살아 숨 쉬어야 다른 예술이 더욱 꽃피울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자기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대중에게 통할 수 있는 연극을 계속 개발하고 기획하는 제작자들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극계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하고요.” 그는 2년 전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힘들다. 코로나19로 공연이 갑자기 취소돼도 대관료를 100% 다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의 발언은 대관료 지원사업이 생기는 계기가 됐고, 지난 8월부터 감염병과 천재지변 등 기타 불가항력 사유를 대관료 반환 사유로 명시한 ‘공연예술 표준대관계약서’가 도입되기도 했다.
스타들이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이유는?

김수로에게는 오늘도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는 스타들이 많이 찾아온다. 연극 〈돌아온다〉에는 배우 홍은희, 이아현, 박정철 등 TV에서 활동했던 배우들이 무대에 올랐다. 강하늘, 김선호, 박은석 등 대중적 인기를 얻어도 마치 연어처럼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스타들도 많다. “예전에는 무조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매체 연기를 선호했지만,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배우들도 트레이닝을 해야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연극은 관객의 반응을 현장에서 바로 느낄 수 있어서 무대의 진한 맛을 잊을 수 없죠.” 그는 “최근 돈보다 내실을 기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문화 선진국이 되는 것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오는 12월까지 공연되는 연극 〈아트〉는 그에게 배움의 현장 그 자체다. 원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세 남자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이순재는 고전을 좋아하는 지적인 항공 엔지니어 마크, 노주현은 예술에 관심이 많은 피부과의 세르주, 백일섭은 우유부단한 문구 영업사원 이반 역을 각각 맡았다. “세 분을 연습실에서 볼 때마다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껴요. 대사 양도 많은데, 첫 연습에서 80% 가까이 암기해 오셨더라고요. 체력 등 자기 관리를 잘하신 점도 존경스러웠어요. 레전드들이 만사 제치고 연극 무대를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에 울컥했죠.” 축구 마니아로 유명한 그에게는 영국 첼시로버스의 구단주라는 또 하나의 명함이 있다. 최근 첼시로버스는 13부 리그 우승을 차지해 12부 리그로 승격했다.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축구 감독이 되고 싶어요. 50부터는 비시즌에는 연기도 겸하면서요. 축구 감독 겸 배우, 정말 멋있지 않나요?”
좋아하는 일 하면, 인생은 ‘현재 진행형’
내년에 데뷔 30주년을 맞는 그는 “팬들이 행사를 준비한다고 하는데, 30주년 기념으로 좋은 연극 한편에 출연하고 싶다”면서 웃었다. 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최고의 노후 대비이자 늘 젊고 활기 있게 살아가는 비결이기도 하다. “100세 시대에 은퇴가 따로 있나요? 좋아하는 일 하면, 인생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죠. 나이가 들어도 좋은 무대에 더 많이 서고 싶은 욕심밖에는 없어요.” 성실히 모은 돈을 저축하고, 지인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조금 투자하는 것이 재테크의 전부라는 김수로. 그는 “무대를 세우고 제작하는 것이 저의 본업이자 부업”라고 말했다. 그는 “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삶의 흔적을 모으는 것 역시 중요하다”면서 “여행을 통해 추억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연예계의 소문난 ‘인맥왕’이기도 한 그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힘들 때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교회에 나가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K-콘텐츠’로서 국내 공연의 우수성을 알리고파

“영화 〈로맨틱 헤븐〉, 〈점쟁이들〉, 드라마 〈신사의 품격〉 등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한 그에게 출연 제의가 쏟아지지만 매체는 1년에 두 작품 정도만 출연하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영국 웨스트엔드 등 해외의 좋은 라이센스 작품을 직접 보고 구매해 소개하는 등 제작자로서 바쁜 일정도 소화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는 내년에도 6~7개가량의 연극과 뮤지컬을 무대에 올린다. 일단 대중적인 뮤지컬로 수익이 발생하면 연극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의 꿈은 전 세계에 K-콘텐츠로 국내 공연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다. “K-pop, 영화, 드라마 등 K-콘텐츠의 중심부가 터졌으니 이제는 연극, 뮤지컬 등 공연계에도 자연히 관심이 쏠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해외 공연과 비교해 우리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공연 제작 역량은 절대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언어의 장벽도 자막기를 써서 뛰어넘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봐요.” 지천명을 넘어서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그의 신조는 ‘청출어람(靑出於藍)’으로 바뀌었다. “제가 대학이나 연극학교에서 학생들을 많이 가르치다 보니 이제 선배보다 나은 후배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월드 스타도 많이 탄생하고요. 우리나라가 세계를 문화 예술로 선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이은주 서울신문 기자
사진 SM C&C, 김수로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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