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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접붙이기로 피워낸 생명의 꽃 – 아름다운 이종 교배 그려내는 영화 <애프터 양>

어쩌면 이것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어느 우주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평행세계의 일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는 양의 기억이 어디서 본 듯 이리 익숙할 리 없고 양이 없는 세상이 현실인 듯 이리 허전할 리 없다.
2001년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배경 음악으로 익숙한 ‘글라이드’가 다시 울린다.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은 우주의 진공 대신 인간적 정서를 가득 채워 시간을 한 바퀴 도는 공상과학 영화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

양(저스틴 H. 민)은 안드로이드의 이름이다. 테크노 사피엔스라는 인간과 꼭 닮은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처럼 흔한 세상이라는 설정이다. 제이크(콜린 파렐)와 키라(조디 터너 스미스)는 입양한 딸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를 위해 양을 구입한다. 중국계인 미카에게 아시아의 문화를 알려주고 교감할 존재가 필요해서다. 
백인 아버지, 흑인 어머니, 중국인 딸과 안드로이드라는 서로 이질적인 4인 가족은 뜻밖에 다정하고 아름답다. ‘4인 가족’ 자체가 베이비부머 시대 표준 가족의 이상형이었다. 미카는 3인 가족은 싫다, 4인 가족이어야 한다고 우기는데 그것이 꼭 DNA 복제나 결혼에서 나온 가족일 필요는 없는 시대인 것이다. 현실에서 이미 혈연 중심 가족주의의 지각변동을 경험해 본 우리에겐 서로 이질적이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영화 속 가족은 완전체처럼 느껴진다. 양을 잃고 커다란 블랙홀이 생기기 전까지는. 4인 가족 댄스대회에 나간 가족은 신나게 춤을 추는데, 갑자기 양이 춤을 멈추지 않더니 어느 순간 방전된 듯 뻗어버린다. 처음엔 아끼던 가전에 대한 애착 정도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양을 팔았던 가게는 문을 닫았고, 코어 고장으로 수리 불능 판정을 받으면서 가족은 큰 상실을 경험한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양의 기억장치만이 유품처럼 남았다. 양은 기계다. 그의 감각은 센서일 뿐이며 기억은 0과 1이 조합된 메모리칩이다. 그런데 그의 기록과 그에 대한 기억들을 재생하다 보니 자꾸 인간적인 의문이 떠오른다. 양, 우리를 사랑했니?

꿈꾸는 안드로이드

인간이라는 존재를 의아하고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던 양. 안드로이드에겐 불법인데도 그 기억을 남몰래 저장했던 양. “제게도 그냥 지식이 아니라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장소와 시간에 관해서요.” 양의 기록을 재생하던 제이크는 우려낸 찻잎을 나눠 마시던 그날 양이 했던 말을 퍼뜩 떠올린다. 욕망하는 안드로이드라니. 지금의 과학은 오직 생명체만이 스스로 진화한다고 믿지만, 안드로이드 양은 조용히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혹시 양이 인간이 되고 싶어 했나?” 제이크의 질문에 양의 친구인 다른 복제인간은 웃었다. “인간의 시각에서나 할 수 있는 질문이군요.” 이런 질문이 처음은 아니다. 〈그녀〉나 〈블레이드 러너〉처럼 인간다움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 영화들은 이미 있었다. 이 경우엔 답이 중요하다.
“네 친부모는 어디 있느냐”라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슬퍼하는 미카에게 양은 접붙이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일이 있었다. 나뭇가지를 잘라서 다른 나무에 붙이면 새로운 나무가 만들어진다. 마치 미카처럼. 마치 양처럼.

녹아드는 세계에서

그러니까 〈애프터 양〉은 이종 교배에 관한 영화다. 코고나다 감독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전작 〈파친코〉에서 그랬듯 이 SF 영화에서도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탐구한다. 모더니즘 건축으로 만들어진 영화 속 세계에서 백인들은 일본 라면을 먹고 찻잎 하나에 흙과 숲과 물이 녹아 있는 중국 차를 마신다. 단일한 인종이 표준적인 삶을 추구하는 한국 사회에는 아직 실감이 덜할 수 있지만, 늘어나는 디아스포라 시대에 이 영화는 미래에서 온 정말 현실적인 편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시대에도 다른 인종이나 안드로이드를 혐오하는 이웃은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가족에게, 안드로이드 자신들에게도 양이 기계인지 인간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만약에 우리가 있는 힘껏 사랑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조용히 작동을 멈춘다면, 눈물 대신 그가 남긴 기억만이 전해진다면,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그는 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듣게 된다면, 이런 죽음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애프터 양〉은 미래 사회에 대한,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판타지다.  

남은주 번역가
사진 왓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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