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발견

건강

‘생활습관병’ 잡아야 건강 튼튼 노후 든든

든든한 노후를 위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건강이요, 그 첫걸음은 매일의 생활습관을 점검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하루 종일 얼마나 움직였는지, 술 담배는 얼마나 하는지 등이 나의 노후 건강을 결정짓는다. 이번 호에서는 고혈압, 요로결석, 폐암과 관련된 최신 의학정보를 소개한다. 최근 30대에서도 흔히 발병, 꾸준한 식이요법 도움돼 고혈압은 별다른 증상 없이 시작되기 때문에 초기에 소홀히 관리하면 뇌졸중, 심근경색 등 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30대에서도 흔하게 발병되면서 초기 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고혈압은 일상에서 흔히 보는 질환 중 하나로 유병률은 연령에 따라 다르나, 전체적으로 20% 정도로 알려졌다. 고혈압은 뇌혈관질환・관상동맥질환・심부전・신부전 발생에 중요한 위험인자이며, 혈압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만으로 심혈관계 합병증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고혈압을 제때 치료하고 적정 수준으로 혈압을 유지하는 환자는 25∼30%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고혈압은 수축기 혈압이 140mmHg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 90mmHg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고혈압이 있다고 무조건 약을 먹어야 한다거나,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만으로 고혈압을 예방하고 적정 수준으로 혈압조절이 가능하다. 고혈압 관리는 올바른 혈압 측정에서 시작된다. 고혈압 환자는 최소 하루에 한 번 혈압을 측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혈압은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혈압을 올바르게 측정하려면 ▲혈압 측정 전 30분 동안 흡연이나 카페인 섭취를 금한다 ▲혈압 측정은 최소 5분 이상 휴식 후에 시행한다 ▲등을 기대고 앉아 팔을 걷어올리고 심장과 같은 높이로 유지한다 등 수칙을 지켜야 한다. 과도한 체중은 혈압 상승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 과체중은 고혈압뿐만 아니라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10% 이상 과체중인 고혈압 환자에서 5kg 체중감량만으로 혈압 강하를 가져올 수 있다. 일주일에 4~5회 이상, 30~40분가량 빨리 걷기 정도의 중증도 운동만으로도 혈압을 떨어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 심부전이나 심근경색 등 동반 질환이 있는 경우엔 운동에 대해 의사와 상의하고, 전문적인 관리를 통해 운동량을 조절하는 것이 추천된다. 과도한 염분 섭취가 혈압을 상승시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식은 염분이 많은 국물 음식(국, 찌개, 탕)이 많아서 주의가 필요하다. 채식을 주로 하는 사람은 육식을 주로 하는 사람보다 혈압이 낮으며, 채식 위주의 식단은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낮춰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일, 채소, 섬유소의 섭취를 늘리고 포화지방산의 섭취를 줄이면 혈압이 낮아질 수 있으므로 이러한 식이요법을 꾸준히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탄산음료 대신 물이나 과일 섭취하세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국내 1인당 연평균 커피 소비량은 428잔으로 한 사람이 하루 한 잔 넘게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즐겨 마시는 커피와 탄산음료, 맥주가 요로결석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요로결석은 신장과 방광, 두 기관을 이어주는 좁은 요관이나 요로 등에 돌이 생겨 극심한 통증과 감염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이 중 요관에 생기는 요관결석은 전체의 70%에 달할 정도로 가장 많으며, 옆구리와 허리를 찌르는 듯한 심한 통증이 특징이다. 경우에 따라 혈뇨와 구토, 복부팽만 등이 나타나기도 하며 증상이 심해지면 요로 감염, 신부전증 등 합병증까지 나타난다. 요로결석의 발병 원인은 식습관과 유전적 요인 등 다양하지만 특히 더운 때는 ‘수분 섭취’와 연관성이 크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 충분히 수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소변량이 갑자기 줄어든다. 이에 따라 소변의 농도가 짙어지게 되고, 이때 소변으로 배출되지 못한 칼슘이 소변 내에 축적되면 결석이 생기기 쉽다. 갈증 해소를 위해 물 대신 탄산음료나 맥주를 자주 마시게 되는데, 탄산의 청량감을 내려고 첨가한 인산이 요로결석의 주요 원인이 된다. 실제로 콜라 1캔(250g)에는 인이 38mg 들어 있다. 맥주 거품의 주성분 또한 탄산가스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체내에 결석이 더 잘 만들어진다. 요로결석을 예방하려면 맥주보다는 물을 마시고, 결석 형성을 억제하는 구연산이 풍부한 오렌지・자몽과 같이 신맛 나는 과일이나 주스를 마시는 것이 좋다. 흡연량 줄이면 폐암 발병 위험 45% 감소 흡연이 암을 비롯해 여러 질환의 요인이 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담배를 완전히 끊는 것이 어렵다면 하루에 피우는 담배 개비 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를 검증하기 위해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이기헌 교수팀이 흡연량 감소 및 흡연 습관 변화와 암 발생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이번 연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2002~2003년과 2004~2005년에 총 2회 건강검진을 받은 40세 이상 남성 14만 3071명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평균 10~19개비를 피우는 흡연자가 10개 미만으로 담배를 줄였을 때, 계속해서 20개비 이상의 흡연량을 유지하는 흡연자에 비해 폐암에 걸릴 위험성이 45% 감소했다. 흡연 관련 암에 걸릴 위험성은 26%, 모든 종류의 암에 걸릴 위험성 자체도 18%나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흡연 관련 암이란 비인두암, 식도암, 위암, 대장암 등 다른 암에 비해 흡연의 영향을 더 직접적으로 받는 암을 뜻한다. 이기헌 교수는 “그동안 흡연량과 암 발생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주로 서양인을 대상으로 진행돼 아시아 환자들에 대한 정보는 부족한 실정이었다”며 “이번 연구는 국내 건강검진 대상자인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으 며, 14만이 넘는 빅데이터로 높은 대표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고 말했다. 글 이정윤·의학신문 기자(자료제공 전원생활)

여행

푸른 물아 너는 왜 흘러오느냐

1457년 6월 22일 돈화문을 출발한 단종의 유배행렬은 천리길을 걸어 꼬박 일주일 후인 6월 28일 마침내 청령포에 이르렀다. 이곳은 송림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서쪽은 육육봉이 우뚝 솟아 있으며 삼면이 깊은 강물에 둘러싸여 한눈에 보기에는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절해고도(絶海孤島)와도 같은 곳이었다. 강원도 영월은 길마다 사람의 사연이 배어 있다. 그 사연은 그대로 역사의 한 구비이기도 하다. 단종 유배길과 김삿갓 유허지가 대표적인 곳이다. 영월군은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솔치재 입구에서 청령포에 이르는 43km 구간을 ‘단종대왕 유배길’로 조성했다. 이 길은 꼭 ‘단종애사’ 때문이 아니더라도 고개를 넘고 강물을 따라 걸으며 강원도의 수려한 자연과 소박한 인심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길은 다시 강물을 따라 김삿갓 유허지로 이어진다. 거기 평생을 해학과 풍자의 삶을 살다 간 방랑시인이 청산 속에 아늑히 잠들어 있으니. 고운 임 여의옵고 1457년 6월 22일, 단종(1441~1457)은 살곶이다리를 건너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머나먼 유배길에 오른다. 남한강 물길을 거슬러 배가 닿은 곳은 이포나루. 여주의 어수정에서 잠시 목을 축인 단종은 여기서부터 뭍길로 영월 땅을 향한다. 원주 싸리치를 거쳐 영월 청령포에 이르는 길은 고개마다 단종의 피눈물이 스민다. 노산군으로 강등당한 단종이 올랐다 하여 군등치(君登峙), 슬픔으로 서산에 지는 해를 향해 절을 한 배일치(拜日峙)며, 마침내 참았던 눈물처럼 소나기가 흩뿌리는 소나기재를 넘는다. 소나기재 마루에서 바위가 갈라진 선돌 사이로 바라보는 서강 물은 참으로 무심하다. 그 물은 청령포의 발치를 적신 후 이내 동강 물과 만나 남한강이 되어 흐른다. 남한강 물은 다시 북한강 물과 만나 한강이 되어 한양으로 흐르고. 하지만 시간은 물길처럼 되돌릴 길이 없어 끝내 유배의 포구에 다다르고야 만다.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이고, 남은 한 면마저 험한 절벽으로 막힌 청령포는 오롯이 유배를 위해 태어난 땅이다. 나어린 단종은 이곳에서 한때를 보내며 그 소명을 완성한다. 해질 무렵이면 서쪽 낭떠러지에 올라 아득한 한양 땅을 그리워했다는 것이니, 이른바 ‘노산대’다. 솔숲 사이에 우뚝한 ‘관음송(觀音松)’은 또 어떤가. 이 땅에서 가장 키가 크다는 이 소나무는 단종의 슬픈 사연을 보고 들었으니 관음송이다. 그러나 단종은 청령포에서마저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해 여름 홍수가 나자 읍내 동헌인 관풍헌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겨울을 나기로 했으나 금성대군에 의한 복위사건으로 다시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었으며, 끊임없이 자살을 강요당하다 그해 10월 24일, 마침내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야 만다. 그때 그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세조의 명을 받아 단종에게 먹일 사약을 가지고 왔던 금부도사 왕방연은 어명을 받들어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물가에 앉아 긴 울음을 운다. ‘단종대왕 유배길’은 청령포에서 끝이 나지만, 단종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은 아무래도 장릉이 종착지가 된다. 후환을 두려워한 탓에 거두는 이 없이 버려져 있던 단종의 주검은 한밤중 영월 호장 엄홍도에 의해 몰래 옮겨져 산기슭에 묻혔다. 그 무덤이 바로 장릉이다. 산줄기 높은 곳에 자리한 능은 소나무숲에 둘러싸인 채 한양을 향하고 있는데, 그를 둘러싼 소나무들이 묘를 향해 절을 하듯 묘하게 틀어져 있어 더욱 애틋하기만 하다. 나는 지금 청산을 찾아가는데 평생을 삿갓으로 해를 가리고 죽장에 의지한 채 방랑을 일삼던 김삿갓(1807~1863)은 쉰일곱의 나이에 전라도 화순 동복에서 숨을 거둔다. 그런 아버지 뒤를 좇아 역시 방방곡곡을 떠돌던 그의 아들 익균은 어렵사리 화순에 묻힌 아버지의 시신을 거두어 그가 방랑 전까지 살았던 영월땅 어느 기슭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그의 노래는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었지만, 그의 무덤은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진 채 끝내 종적을 찾을 길이 없게 되었다. 그의 무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은 1982년. 영월의 향토사학자 박영국의 평생에 걸친 노력 덕분이었다. 그는 ‘김삿갓의 무덤은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의 양백지간, 영월과 영춘 어간에 있다’는 고문서 기록 하나에 의지해 마침내 영월 와석골 노루목에서 사라진 무덤을 찾아낸 것이다. 김삿갓의 본명은 병연, 호는 난고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머리가 좋고 글재주가 뛰어났으며 향시에 나가 급제까지 하였으나, 평생을 ‘죽장망혜(竹杖芒鞋)’ 방랑의 삶으로 떠돌아야만 했다. 그가 그리 된 것은 향시 때 자신이 쓴 글 때문이었다. 향시의 시제는 ‘홍경래의 난 때 농민군에 붙잡혀 목숨을 구걸한 선천 부사 김익순의 죄를 탄하라’는 것이었고, 그는 거침없이 ‘한 번 죽어서는 그 죄가 가벼우니 만 번 죽어 마땅하다’고 써내려가 그 글로 장원에 급제했다. 그렇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김익순은 바로 자신의 친할아버지였다. 집안에서 그 사실을 숨기는 바람에 자신만 까마득하게 몰랐던 것이다. 부지불식간 자신의 선조를 욕보인 그는 그 죄를 씻을 길이 없다 하여 입신양명은 커녕 집도 처자도 버리고 머나먼 방랑길에 올랐다. 하지만 타고난 글재주만은 어쩔 수 없었는지 가는 곳마다 시문을 지으면서 숱한 예화를 남겼다. 그의 글은 마치 자신의 아이러니한 신세를 한탄이라도 하듯 골계와 해학으로 넘치고, 때론 양반 세도가의 허위의식을 가차 없이 비판하는 통렬함을 보이기도 한다. 이 땅에 남아 있는 김삿갓의 자취는 그의 일생만큼이나 허망하다. 그의 출생지로 알려진 양주 회암리의 폐사지가 그렇고, 그가 생을 마감했다는 화순의 초분지도 그 자리만이 남아 있을 뿐 초분은 바람결에 흩어진 지 오래다. 그 모든 것이 처음부터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의 평생이 온통 방랑이었으니 어디서 났으며, 어디에 머물렀으며, 어디로 가는지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와석리 노루목에 이르는 그의 유허를 찾아가는 길은 4km의 긴 계곡으로 이어지는데, 그 길에 청산은 속절없이 푸른 물을 흘려보낸다. 글·사진 유성문·여행작가

인물

62세의 나이에 KFC를 일궈낸 할랜드 샌더스

전 세계 100여 개국에 매장을 갖고 있는 프라이드 치킨의 대명사인 KFC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KFC 매장을 방문해 본 사람은 입구에 하얀 색 양복을 입은 할아버지 동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가 바로 KFC의 창업자 할랜드 샌더스다. 그가 KFC 1호점을 열었을 때의 나이는 62세였다. 인생 전반부는 가난과의 싸움 할랜드 샌더스는 1890년에 미국 인디애나주 핸리빌에서 태어났다. 여섯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열두살에 어머니가 재혼을 하며 고향을 떠나 버렸다. 그 이후 그의 유년기는 말 그대로 가난과의 싸움이었다. 열두살 어린 나이에 그보다 더 어린 동생들을 위해서 매일 저녁 식사를 만들어야 했는데, 이때부터 요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동생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면서 그의 요리 실력도 점점 늘어갔다. 1907년 17세의 나이에 샌더스는 미 육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40세가 되어 어느 정도 돈이 생기자 육군에서 전역한다. 참고로 그는 90세에 사망하는데, 그의 장수 비결은 육군 복무 시절 습관화 된 규칙적인 생활이라고 한다. 전역 후 그동안 연구해 놓은 자신의 요리법을 바탕으로 켄터키주 코빈의 주유소 근처에 작은 식당을 열어, 도로 이용자들에게 미국 남부 음식을 요리해 팔기 시작했다. 장사는 굉장히 순조로워서 샌더스의 식당은 지역에서 맛집으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새옹지마인지 그의 식당 근처 도로를 대신해서 새로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손님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식당에 화재가 나는 연속되는 불행을 겪는다. 60세가 되던 해에 결국 식당은 폐업했다. 손자 돌볼 나이에 새로운 사업을 결심 60세의 나이에 남은 재산이라고는 월 105달러의 연금과 낡은 트럭 한 대밖에 없는 상황에서 할랜드 샌더스는 다시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자신의 닭튀김 요리법을 파는 일이었다. 샌더스는 튀김 도구를 잔뜩 실은 개조된 트럭을 몰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당시에는 평균수명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60세는 손자들의 재롱이나 보고 여생을 즐길 나이였다. 하지만 그는 닭튀김 비법을 팔기 위해서 1,008번이나 도전했고, 같은 횟수만큼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이 들어 젊은 사람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퇴짜를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목표를 수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1,009번째 도전 끝에 자신의 닭튀김 비법에 투자할 사람을 찾아냈다. ‘웬디스 버거’의 창립자인 데이브 토마스가 자신의 식당에서 샌더스의 요리법으로 만들어진 치킨을 판매하는 조건으로 샌더스에게 치킨 1조각당 0.04달러의 로열티를 지불하기로 계약을 맺는다. 그 전까지 미국 남부의 가정식에 불과했던 프라이드 치킨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순간이었다. 샌더스가 트럭에 짐을 싣고 도전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그는 트럭 안에서 잠을 잤고, 아침이면 훗날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구겨진 하얀색 양복을 다려 입고 투자자를 찾아 문을 두드렸다. 이후 샌더스는 사업가인 피트 하먼과 계약해서 마침내 KFC 1호점을 탄생시킨다. 이때 샌더스의 나이는 62세였다. KFC가 자리를 잡은 이후 할랜드 샌더스는 자신을 샌더스 대령이라고 칭하며 흰 양복을 입고, KFC의 마스코트를 자처하였다. 또한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왕성히 활동하다가 1980년 90세의 나이에 사망하게 된다. 샌더스가 살아온 인생은 말 그대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꿈은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이뤄진다는 ‘인내’의 정신을 배울 수 있다. 만약 그가 자신 앞에 닥친 불운을 원망하고 좌절했다면, 1,009번의 인내와 도전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생을 모아 세운 레스토랑이 고속도로 개발에 밀려 하루아침에 사라질 위기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과연 나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거기서 답을 찾았다. 파산 직전의 상황에서 샌더스는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현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했다. 그리고 그 답은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바로 사람들에게 프라이드 치킨 요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더 빛날 수 있다는 믿음 샌더스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발상에 속하는 요리법을 팔겠다는 아이디어 덕분에 그는 세계적인 프랜차이즈의 대표가 될 수 있었다. 불운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강인한 정신력과 낙천적인 세계관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2년 동안 내리 1,008번이나 거절을 당하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인내심은 경이로울 정도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거절’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그는 거절을 자신의 인격과 동일시하지 않았다. 거절이란 단지 자신이 팔고자 하는 닭튀김 요리법의 부족함을 뜻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고 믿었던 것이다. 덕분에 거절을 당할수록 그의 프라이드 치킨은 더욱 맛있어졌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거절을 당하는 일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거절을 당하기보다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실리보다 명분에 집착한다. 명분에 집착할수록 판단력은 흐려지고 행동은 느려진다. 샌더스는 1,008번이나 거절을 당하면서도 차라리 그 과정을 즐기는 길을 선택했다. 그 스스로 이 과정을 탐험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프라이드 치킨 요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희망으로 2년을 버텼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가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빛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까지나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했다. 글 김대근 NH농협은행 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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