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건강 희소식
인간은 태생적으로 게으르다. 부모 눈에도 자식들은 다 게을러 보인다. 하지만 몸의 입장에서 보면 게으름은 효율적인 몸놀림이다. 몸을 보존하기 위한 방어 수단이다. 기아(饑餓) 시대를 견뎌야 했던 조상은 어떻게든 칼로리 소비를 줄여 에너지를 비축해야 했다. 게으름은 그렇게 나온 조상 유전자 대물림 현상이다.
생산 노동이 아닐 바라면 가능한 한 적게 움직이면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생활 방식의 결과물이 바로 게으름이다. 누워 있어야 편한 것은 부단한 직립보행에 대한 보상이다. 물리학적으로 수직보다 수평이 더 안정적이기도 하다. 어째 됐건 우리는 게으름을 타고났다.
하지만 세상이 기아에서 풍요로 바뀌었다. 게다가 지식정보산업 사회로 넘어오면서 신체 사용이 급격히 줄었다. 직립보다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더욱이 인공 지능 시대로 넘어가면서 두뇌 활동량도 갈수록 준다. '머리는 베개 벨 때와 모자 쓸 때, 그리고 머릿수 셀 때만 필요하다'는 농담이 나올 법하다. 용불용설(用不用說)에 따라 몸과 뇌는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미래에서 지구로 온 외계인이 팔다리는 가늘고, 머리 작은 '이티'(ET) 형상이지 싶다.
인간의 게으름을 타고났다?
이제 억지로라도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 천부적으로 게으른 인간에게 운동은 고역일 수 있다. 최근 게으른 자들을 위한 나름 과학적인 운동법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과학자들만큼은 좀 부지런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핀란드 과학자들이 연구한 '뇌에 좋은 운동'이 있다. 고령 사회를 맞아 치매와 관련해 뇌에 좋은 운동 연구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과학자들은 쥐를 갖고 실험을 했는데, 운동 효과 연구는 동물과 사람에게 유사하게 나온다.
4가지 운동 조건을 설정했다. 첫 그룹은 러닝머신을 설치하고 그 속에서 쥐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했다. 대부분 가볍게 뛰었고, 대개 하루에 3~4킬로를 조깅했다. 둘째 그룹에게는 쥐 꼬리에 무게를 달아 벽 타기를 시켰다. 일종의 근력 강화 운동이다. 셋째 그룹에는 러닝 머신 위에서 3분은 빨리 뛰게 하고, 2분은 천천히 걷게 했다. 이를 15분 동안 세 번 반복했다. 고강도 저강도 교차 인터벌 운동이다. 넷째 그룹은 그냥 놀고먹게 했다. 앉거나 누워만 지내는 '귀차니즘' 계열이다.
두 달 가까이 운동을 시키고 나서 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그중에서도 학습·기억 관련 핵심 부위 해마에 얼마나 많이 신경조직이 새로 생겼는지 살폈다. 해마가 두꺼운 채로 활성화되어 있으면 기억력이 왕성하다. 반대로 퇴행·위축되면 치매가 잘 생긴다. 치매 환자들은 해마가 얇다.
실험 결과, 가볍게 뛴 그룹의 해마가 제일 크게 두꺼워졌다. 귀차니즘 그룹보다 최대 3배 커졌다. 조깅 거리가 길수록 새로운 신경세포들이 많이 자랐다.
반면, 근력 강화 그룹에서는 해마 두께 변화가 없었다. 근력은 세졌지만, 뇌신경 재생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터벌 트레이닝 그룹에서는 신경 재생이 일어났지만, 조깅 그룹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결국 뇌를 위해서는 복잡하거나 요란하게 운동할 것 없이, 오랜 시간 편한 방법으로 조깅을 하라는 얘기다.
평일에는 짧고 굵게, 휴일에는 길~게 운동
몸을 위한 운동에도 '요령 과학'이 있다. 캐나다 맥마스터대 과학자들은 운동이라고는 '운' 자도 안 한 뚱뚱한 젊은이들을 모았다.
한 그룹은 일주일에 세 번씩 45분간 가볍게 땀이 날 정도로 자전거를 굴렸다. 다른 한 그룹에게는 2분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그다음 20초간 아주 빠르게 타게 했다. 같은 방식으로 세 번 반복시켰다. 운동 횟수는 두 그룹이 같다. 석 달 후 이들을 '귀차니즘 대조군'과 비교해 보니, 근육의 유산소 운동 능력과 혈당 대사 효율이 둘 다 20% 좋아졌다. '45분 일상 자전거'와 '1분 총알 자전거' 간에 근육 운동 효과가 같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뇌에는 오래 버티는 운동이, 몸에는 순간 힘쓰는 운동이 효율적이다. 바라건대, 두 개의 조합이 최상이다. 이를 일상에 접목하면 바쁜 평일에는 짧은 고강도, 여유 있는 휴일에는 긴 저강도 방식이 최적이다. 선천적으로 게으른 와중에 그나마 부지런을 떨어서 하는 몸과 뇌 균형 운동법이다.
그것도 싫은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운동과 담을 쌓은 사람이 그렇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 일본 도쿄대 노화 연구소에서 한 조사를 주목하자. 65세 이상 사람 수천 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생활 패턴과 건강 상태를 추적했다. 누구나 예상한 대로, 정기적으로 운동한 사람이 더 건강하다. 결혼한 사람이 건강하고, 치아 상태가 좋아 식사를 잘한 사람이 건강하다.
그런데 특이한 사안이 있었다. 혼자서 운동을 정기적으로 한 사람과 운동은 담쌓고 친구들과 어울린 그룹이 있었다. 이 둘 중 누가 건강했을까. 의외로 운동은 안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린 그룹이다. 즉 어울리지 않고 운동하는 것보다, 운동은 안 해도 어울리는 게 더 낫다는 얘기다. 어울리다 보면 돌아다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기본 움직임을 하는 것이다. 물론 운동하면서 어울리면 더 좋다. 정 운동하기 싫다면 어울리기라도 해야 한다.
나이 들수록 어울릴 사람들이 적어진다. 그래서 노년으로 갈수록 돈모아놓는 재테크, 몸 다지는 헬스테크,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정테크가 필요하다. 건강은 몸만 갖고 안 된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같이 밥 먹고, 자원봉사를 하면서 남을 돕고, 의미 있는 곳에 기부하는 생활 속에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꽃 피운다. 이건 장수의학 연구에서 나오는 일관된 결과다.
글 김철중・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