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발견

건강

극심한 통증 따르는 통풍

통풍은 요산이라는 체내 대사산물이 과다하게 축적돼 발생하는 일종의 관절염이다. 통풍 초기에 급성 발작이 오면 뼈가 깨지는 듯한 통증이 따른다. 통풍 환자는 술 종류에 상관없이 음주를 자제하고 증상이 반복되면 병원을 찾아 치료해야 한다. 음식으로 섭취하거나 체내에서 합성된 ‘푸린’이라는 물질은 대사 과정을 거쳐 요산으로 전환되며 이 중 3분의 2는 신장을 통해 소변으로 배출된다. 인체는 매일 일정량의 요산을 생성하고 배출하면서 혈중 요산 농도의 균형을 유지한다. 하지만 요산이 과다 생성되거나 적절한 배출이 이뤄지지 못해 불균형이 생기면 혈액 내 요산 농도가 증가하는데, 이를 ‘고요산혈증’이라고 한다. 고요산혈증이 지속되면 요산이 결정형태로 관절과 주변 조직에 쌓일 수 있고, 여러 요인에 의해 급성 염증이 발생하면 관절이 벌겋게 부어오르면서 뼈를 부수는 듯한 심한 통증이 온다. 이를 ‘통풍 발작’이라고 하며, 통증 강도가 강해 일반적인 관절염과는 확연히 다르다. 맥주뿐 아니라 음주 자체를 자제해야 맥주와 치킨은 대부분의 성인들이 선호하는 최고의 궁합이다. 시원한 맥주에 바삭한 치킨 한 입이면 하루의 갈증이 다 풀린다. 주류 중 맥주가 통풍 발작발생 위험이 가장 높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어 이러한 ‘치맥’이 통풍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데, 맥주 대신 소주를 마시면 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체내로 흡수된 알코올 자체가 요산이 소변으로 배출되는 것을 막고 혈중 요산 농도를 증가시켜 통풍 발작을 유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종류에 상관없이 주류는 섭취를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푸린 함량이 높은 음식도 조심해야 한다. 동물의 내장이나 농축 육수, 꽁치·고등어와 같은 등푸른생선, 쇠고기·돼지고기와 같은 붉은 고기, 액상과당이 포함된 탄산음료 등이 이에 해당한다. 흰살생선·닭고기·견과류·채소는 통풍 위험을 높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저지방 유제품, 비타민C, 식물성 기름은 통풍 위험을 낮춰 이들 음 식 위주로 섭취하면 통풍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과당이 포함되지 않은 블랙커피는 통풍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관절 주변 붓는다면 약물 치료받아야 통풍 초기에는 관절에 급성 염증이 생기면서 주변이 붓고 피부가 붉은색을 띠며 극심한 강도의 통증이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은 대개 3~10일 사이에 호전된다. 처음에는 증상이 드물게 발생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점점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발작이 호전된 이후에도 만성 염증과 통증이 지속될 수 있다. 또한 적절한 시점에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요산 결정 덩어리가 피부 아래 관절 주변에 침착하는 통풍 결절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를 만성 결절성 통풍이라고 한다. 급성 통풍 발작은 환자 상태나 동반 질환을 고려해 적절한 약물로 치료하며, 대부분 3~7일 사이에 증상이 호전된다. 통풍 발작이 드물게 발생한다면 아플 때만 소염진통제를 먹어도 괜찮지만, 증상이 장기적으로 자주 나타난다면 전문 진료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체내 요산 농도를 줄이기 위한 요산 저하제 치료가 필요한데도 소염제만 복용한다면 만성 통풍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년에 두세 번 이상 통풍 발작을 경험할 때, 요로결석이 있을 때, 신장 기능이 저하된 경우, 관절 손상 혹은 만성통풍 결절이 발생한 경우에는 장기적인 요산 저하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해당 환자들에겐 요산 수치를 낮추는 요산 저하 약물과 통풍 발작 예방 약물을 사용하게 된다. 과체중, 내장 비만 관리도 꼭 필요 통풍의 주요 인자로 꼽히는 ‘비만’을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비만은 전체적인 과체중뿐만 아니라 정상 체중이더라도 내장에 지방이 쌓여 있는 내장 비만까지 포함한다. 지방 세포가 일으키는 염증이 통풍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섭취 칼로리를 조절하고 적당한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이 통풍 예방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과격한 운동은 오히려 요산 농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체중 관리는 신체에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글 하유정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자료제공 전원생활)

심리

불안과 두려움은 다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두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불안과 두려움이죠. 우리의 삶을 좀먹는 이들을 어떻게 하면 떼어낼 수 있을까요? 불안을 두려움으로 바꾸면 이 둘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영희 씨는 딸의 문제로 상담실에 찾아왔습니다. 딸이 학교에서 반 친구를 공격한다고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고, 잘 아는 친구의 어머니는 영희 씨 딸이 자기 딸을 놀려서 힘들다고 전화로 호소했으며, 학원 선생님은 딸이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더 이상 못 가르치겠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영희 씨는 딸을 야단치고 주의를 주었지만 개선되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해 상담실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위협에 처하면 불안하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위협에 처하면 불안합니다(Bowen, 1985). 불안은 ‘분명하지 않고 초점이 없으며 신체적 자극을 동반하는 무서운 상태(케임브리지 사전, 2009)’입니다. 우리는 위협에 처하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숨이 가빠지고, 손에 땀이 나기도 하며, 어떤 때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숨이 멈춘 듯하고, 몸이 차가워지면서 그 자리에 얼어붙기도 하는 등 신체적 자극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확히 어떠한 위협 때문에 불안한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불안의 특성은 ‘모호함’이기에 불안을 다루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는 불안을 두려움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역사상 최초로 구분한 사람은 프로이트(Freud) 이전에 살았던 철학자인 키르케고르(Kierkegaard)입니다. 그는 “불안은 대상이 없으나 두려움은 구체적인 대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파울 틸리히(Paul Tillich)는 그의 유명한 저서 〈존재의 용기(The Courage to Be)〉에서 “두려움은 대상이 있기에 대상을 다룰 방도를 강구해서 존재를 보호하지만, 불안은 대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생물학적으로 보면 불안은 오히려 보호적이라기보다는 파괴적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안을 다루려면 불안을 두려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불안할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알아야 불안을 다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담실에 찾아온 영희 씨는 딸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왜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지 몰랐습니다. 영희 씨의 불안의 대상을 알기 위해 제가 물었습니다. “만약 딸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일까요?”라고요. 영희 씨의 불안을 두려움으로 만드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이성의 뇌를 사용해 불안에 대처하는 것 불안할 때 우리의 뇌는 세 가지 자동반사적 반응을 합니다. 도피(flight), 투쟁(fight), 얼어붙는(freezing) 반응이죠.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뇌의 편도체에서 도망가거나 싸우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도망갈 수도, 싸울 수도 없는 위급한 상황이 되면 간뇌는 인지적·생리적 반응을 대폭 축소시켜서 죽은 듯이 그 자리에 얼어붙게 해 현실에서 자신을 분리(disassociation)하도록 만듭니다. 대상이 없는 불안을 구체적 대상이 있는 두려움으로 만드는 작업은 인간에게 발달해 있는 이성의 뇌이며 생각의 뇌인 전두엽을 작동시킨다는 뜻입니다. 뇌의 전두엽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만들어서 불안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게 합니다. 우리말 속담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절체절명의 위험 앞에서도 이성의 뇌인 전두엽을 사용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대처하면 살 수 있다는 것이죠. 불안은 내부의 두려움에 기인한다 영희 씨가 불안한 이유는 딸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딸이 ‘남에게 불편을 끼치는 존재’이며, 그렇게 딸을 키운 게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영희 씨 부모님은 남에게 불편을 끼치는 존재가 되지 말라고 교육했기에 ‘남이 불편하면 이는 무조건 나의 잘못’이라는 신념이 영희 씨 안에 형성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희 씨는 남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극도로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학교 담임이, 친구 어머니가 그리고 학원 선생님이 딸로 인해 불편하다고 영희 씨에게 호소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딸로 인해 불편하다면 무조건 딸의 잘못이며, 이는 부모인 자신이 딸을 잘못 양육해서라고 해석함으로써 불안했던 것입니다. 딸의 문제 행동이 아니라 영희 씨 내부에 있는 잘못된 죄책감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죠. 영희 씨처럼 자신의 불안을 두려움으로 만들면 불안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상담실에 오기 전 영희 씨는 자신이 왜 불안한지 알지 못해 자기 안에 있는 진짜 불안의 원인인 죄책감을 다루지 않고 계속 딸을 고치려 했던 것이었고, 그래서 영희 씨의 불안이 해결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불안의 대상을 알게 된 후 영희 씨는 딸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 영희 씨 딸은 문제아가 아니었습니다. 영희 씨가 딸 때문에 불편하다고 호소한 사람들 말만 믿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영희 씨는 상담을 통해 자신의 두려움을 다루었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딸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엄마의 지지를 얻은 딸은 급속도로 좋아졌고, 이로써 영희 씨의 불안은 해결됐습니다. 글 한영혜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인터뷰

국민 요리 스승 백종원 – “방송 하면서 스스로 변화… 내 꿈은 관광 한국 만드는 것”

최근 SBS 예능 프로그램 〈맛남의 광장〉 마지막 촬영을 마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 나왔다. 〈맛남의 광장〉은 지역의 특산품이나 로컬푸드를 이용해 신메뉴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이다. 백 대표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침체된 농축산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능력과 인맥을 총동원해 열정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나도 농민의 자손” 위기의 농축산가 살리기 나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혹시나 지역사회에 피해가 갈까 봐 선제적 차원에서 중단했는데 너무 아쉽죠. 저도 농민의 자손이잖아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도 농사를 지으셨는데 이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마음속에서 뭔가 우러나오는 감정들이 있더라고요.” 농어촌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간 백 대표. 그는 못난이 감자 30t, 쪽파 1,000천 상자, 갈색팽이버섯 300상자 등을 줄줄이 완판시키며 농어촌 주민과 소비자들을 연결시키는 가교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현장에서 느낀 농어민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이었다고 털어놨다. “농산물의 판매나 가격의 변동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10~20년씩 일을 한 그분들에게는 어느 정도 몸에 밴 일이죠. 그보다는 마음을 몰라주는 데서 오는 외로움이 더 크시더라고요. ‘자기들만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셨나 봐요. 〈맛남의 광장〉을 통해서 누군가 마음을 알아주고 연예인들도 같이 움직여주니까 외롭지 않다면서 다들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방송가 섭외 0순위’... 그가 방송을 선택하는 기준 구수한 입담에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 방송 감각을 갖춘 백종원은 수년간 ‘방송가 섭외 0순위’로 꼽혀왔다. 그는 KBS 〈백종원 클라쓰〉, JTBC 〈백종원의 국민음식〉, 티빙 〈백종원의 사계〉, 넷플릭스 〈백스피릿〉 등 올해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신규 프로그램을 4개나 런칭했다. 일견 다작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백종원이 장르’, ‘대체 불가 아이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방송가의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제가 방송에 출연하는 이유는 명확해요. 음식 문화나 외식 문화 관련 또는 농수축산물 판매 촉진에 도움이 되는 경우,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경우에만 방송에 출연해요. 저는 정말 방송 욕심 없어요.” 그의 진면목이 빛나는 프로그램이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다. 그는 3년 7개월간 35개 골목을 돌면서 골목상권 지키기에 나섰다. 골목식당을 직접 찾아가 식당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함께 해결방안을 고민한다. 때로는 노하우를 전수하고 때로는 식당 사장님들의 눈물이 쏙 빠지게 호통을 치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장님을 꼽아달라고 하자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느냐”며 애정을 드러냈다. ‘골목식당’의 모토는 “좋은 손님이 맛집을 만든다” “처음에는 준비 없이 식당을 오픈하신 분이나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골목식당〉을 시작했어요. 언뜻 보면 저희가 뭔가를 계도하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그것보다는 식당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하는 목적이 커요. 좋은 손님이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나아가 맛집을 만드니까요.” 백 대표는 〈골목식당〉 출연자들이 자영업 후배라는 생각에 모진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악역’을 도맡는다. 하지만 그는 유독 이 프로그램만큼은 방송 모니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저는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충고해주고 싶은데, 방송을 모니터하는 순간 스스로 검열하고 조심하게 되잖아요. 사장님들도 다 맨얼굴로 출연하는데, 저도 카메라가 있더라도 진짜로 해야죠. 내가 멋있어 보이거나 연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 진심이 통했는지 백종원은 ‘국민 요리 스승’이자 많은 자영업자들과 젊은 창업자들의 ‘국민 멘토’로 불린다. 자신이 쌓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고, 잘못된 점을 정확하게 짚어주기 때문이다. 그는 거창한 수식어는 한사코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인생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자영업도 직장 진급처럼 한 단계씩 올라가야죠”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돼요. 저도 음식이 좋아서 요식업을 시작했죠. 그런데 자영업을 좋아서 선택했다면 절대로 쉽게 생각해서는 안 돼요. 취직 시험 공부를 몇 년씩 하고 직장에 들어가도 진급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자영업은 시작하자마자 본전을 뽑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창업도 취직 시험 준비하듯이 열심히 공부하고,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면서 점차 수익을 늘려야 돼요.” 이어 “너무 큰 그림보다는 내가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서 자꾸 이루는 습관을 들이라. 가장 좋은 건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뛰어난 예능감의 비결을 물으니 “앞에 카메라가 있으나 없으나 거의 똑같이 편하게 한다. 단지 (방송에) 욕만 덜 나가는 것뿐”이라면서 너털웃음을 짓는다. 어느새 그의 인지도는 아내인 탤런트 소유진을 넘어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내한테 미안해요. 제가 아내 덕을 많이 봤죠. 집에서 아이들 음식은 아내가 다 챙겨줘요.” “인생 2막은 한식 알리기와 관광 한국 만들기에 쏟고파” 그는 바쁜 와중에도 집에서 틈틈이 홈트레이닝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푸는 스타일이다. 인생 2막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지는 않았지만 현재 운영 중인 사학재단을 잘 후원하는 것과 한식을 해외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은퇴하면 조그만 식당이나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었는데 얼굴이 알려지다 보니 불가능해졌어요(웃음). 지금은 해외에 한국과 한식을 알리는 일에 관심이 많아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인구가 줄어서 외식 인구를 늘리려면 관광객을 늘리는 수밖에 없거든요. 어떻게든 관광 한국을 만드는 방법을 찾으려고 해요.” 만일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외국어 공부다. 이유는 외국 음식을 더 이해하고 싶고, 외국 식자재도 더 많이 알고 싶어서다. “음식은 내 삶”이라고 말하는 그는 대중에게 “음식에 미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위기에 강한 민족.. 코로나19 반드시 이겨낼 것”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외식업계. 사업 수완이 뛰어난 외식 사업가 백종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는 “우리는 다행히 점주님들이 잘 버텨내고 계시고, 배달 쪽에 잘 적응하고 있다”면서 “우리 국민은 위기에 강한 민족이니까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인터뷰 말미에 백종원은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변화했고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주변에서 자꾸 호인인 것 같다고 하니까 이제는 작은 이익 때문에 움직일 수도 없고 큰 가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돈 욕심이 많았지만, 기부도 하고 농어민들을 돕고 기업을 연결해서 서로 득이 되는 일을 하다 보니 점점 착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방송의 순기능이랄까. 기분 좋은 혼돈이기도 하고요. 사람은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계속 철이 드는 것 같아요.” 행복한 노후를 위한 계획을 물으니 “욕 안 먹게 살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중”이라며 웃는 백종원 대표. 자녀들에게도 돈보다는 인맥을 물려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글 이은주 서울신문 기자(erin@seoul.co.kr) 사진 더본코리아, KBS, SBS, 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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