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민 요리 스승 백종원 – “방송 하면서 스스로 변화… 내 꿈은 관광 한국 만드는 것”
최근 SBS 예능 프로그램 〈맛남의 광장〉 마지막 촬영을 마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 나왔다. 〈맛남의 광장〉은 지역의 특산품이나 로컬푸드를 이용해 신메뉴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이다. 백 대표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침체된 농축산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능력과 인맥을 총동원해 열정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나도 농민의 자손” 위기의 농축산가 살리기 나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혹시나 지역사회에 피해가 갈까 봐 선제적 차원에서 중단했는데 너무 아쉽죠. 저도 농민의 자손이잖아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도 농사를 지으셨는데 이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마음속에서 뭔가 우러나오는 감정들이 있더라고요.”
농어촌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간 백 대표. 그는 못난이 감자 30t, 쪽파 1,000천 상자, 갈색팽이버섯 300상자 등을 줄줄이 완판시키며 농어촌 주민과 소비자들을 연결시키는 가교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현장에서 느낀 농어민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이었다고 털어놨다.
“농산물의 판매나 가격의 변동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10~20년씩 일을 한 그분들에게는 어느 정도 몸에 밴 일이죠. 그보다는 마음을 몰라주는 데서 오는 외로움이 더 크시더라고요. ‘자기들만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셨나 봐요. 〈맛남의 광장〉을 통해서 누군가 마음을 알아주고 연예인들도 같이 움직여주니까 외롭지 않다면서 다들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방송가 섭외 0순위’... 그가 방송을 선택하는 기준
구수한 입담에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 방송 감각을 갖춘 백종원은 수년간 ‘방송가 섭외 0순위’로 꼽혀왔다. 그는 KBS 〈백종원 클라쓰〉, JTBC 〈백종원의 국민음식〉, 티빙 〈백종원의 사계〉, 넷플릭스 〈백스피릿〉 등 올해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신규 프로그램을 4개나 런칭했다. 일견 다작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백종원이 장르’, ‘대체 불가 아이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방송가의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제가 방송에 출연하는 이유는 명확해요. 음식 문화나 외식 문화 관련 또는 농수축산물 판매 촉진에 도움이 되는 경우,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경우에만 방송에 출연해요. 저는 정말 방송 욕심 없어요.”
그의 진면목이 빛나는 프로그램이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다. 그는 3년 7개월간 35개 골목을 돌면서 골목상권 지키기에 나섰다. 골목식당을 직접 찾아가 식당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함께 해결방안을 고민한다. 때로는 노하우를 전수하고 때로는 식당 사장님들의 눈물이 쏙 빠지게 호통을 치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장님을 꼽아달라고 하자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느냐”며 애정을 드러냈다.
‘골목식당’의 모토는 “좋은 손님이 맛집을 만든다”
“처음에는 준비 없이 식당을 오픈하신 분이나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골목식당〉을 시작했어요. 언뜻 보면 저희가 뭔가를 계도하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그것보다는 식당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하는 목적이 커요. 좋은 손님이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나아가 맛집을 만드니까요.”
백 대표는 〈골목식당〉 출연자들이 자영업 후배라는 생각에 모진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악역’을 도맡는다. 하지만 그는 유독 이 프로그램만큼은 방송 모니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저는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충고해주고 싶은데, 방송을 모니터하는 순간 스스로 검열하고 조심하게 되잖아요. 사장님들도 다 맨얼굴로 출연하는데, 저도 카메라가 있더라도 진짜로 해야죠. 내가 멋있어 보이거나 연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 진심이 통했는지 백종원은 ‘국민 요리 스승’이자 많은 자영업자들과 젊은 창업자들의 ‘국민 멘토’로 불린다. 자신이 쌓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고, 잘못된 점을 정확하게 짚어주기 때문이다. 그는 거창한 수식어는 한사코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인생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자영업도 직장 진급처럼 한 단계씩 올라가야죠”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돼요. 저도 음식이 좋아서 요식업을 시작했죠. 그런데 자영업을 좋아서 선택했다면 절대로 쉽게 생각해서는 안 돼요. 취직 시험 공부를 몇 년씩 하고 직장에 들어가도 진급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자영업은 시작하자마자 본전을 뽑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창업도 취직 시험 준비하듯이 열심히 공부하고,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면서 점차 수익을 늘려야 돼요.”
이어 “너무 큰 그림보다는 내가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서 자꾸 이루는 습관을 들이라. 가장 좋은 건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뛰어난 예능감의 비결을 물으니 “앞에 카메라가 있으나 없으나 거의 똑같이 편하게 한다. 단지 (방송에) 욕만 덜 나가는 것뿐”이라면서 너털웃음을 짓는다. 어느새 그의 인지도는 아내인 탤런트 소유진을 넘어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내한테 미안해요. 제가 아내 덕을 많이 봤죠. 집에서 아이들 음식은 아내가 다 챙겨줘요.”
“인생 2막은 한식 알리기와 관광 한국 만들기에 쏟고파”
그는 바쁜 와중에도 집에서 틈틈이 홈트레이닝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푸는 스타일이다. 인생 2막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지는 않았지만 현재 운영 중인 사학재단을 잘 후원하는 것과 한식을 해외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은퇴하면 조그만 식당이나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었는데 얼굴이 알려지다 보니 불가능해졌어요(웃음). 지금은 해외에 한국과 한식을 알리는 일에 관심이 많아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인구가 줄어서 외식 인구를 늘리려면 관광객을 늘리는 수밖에 없거든요. 어떻게든 관광 한국을 만드는 방법을 찾으려고 해요.”
만일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외국어 공부다. 이유는 외국 음식을 더 이해하고 싶고, 외국 식자재도 더 많이 알고 싶어서다. “음식은 내 삶”이라고 말하는 그는 대중에게 “음식에 미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위기에 강한 민족.. 코로나19 반드시 이겨낼 것”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외식업계. 사업 수완이 뛰어난 외식 사업가 백종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는 “우리는 다행히 점주님들이 잘 버텨내고 계시고, 배달 쪽에 잘 적응하고 있다”면서 “우리 국민은 위기에 강한 민족이니까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인터뷰 말미에 백종원은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변화했고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주변에서 자꾸 호인인 것 같다고 하니까 이제는 작은 이익 때문에 움직일 수도 없고 큰 가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돈 욕심이 많았지만, 기부도 하고 농어민들을 돕고 기업을 연결해서 서로 득이 되는 일을 하다 보니 점점 착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방송의 순기능이랄까. 기분 좋은 혼돈이기도 하고요. 사람은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계속 철이 드는 것 같아요.”
행복한 노후를 위한 계획을 물으니 “욕 안 먹게 살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중”이라며 웃는 백종원 대표. 자녀들에게도 돈보다는 인맥을 물려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글 이은주 서울신문 기자(erin@seoul.co.kr)
사진 더본코리아, KBS, SBS, JT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