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발견

건강

몸을 지켜주는 힘 ‘면역력’ 운동과 음식으로 키운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기력을 잃거나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또 감염성 질환을 포함해 다양한 질병에 쉽게 걸리고 잘 낫지 않을 수 있다. 이때 운동과 음식 섭취 등 생활 속 건강 수칙을 지켜 면역력을 키운다면 건강하게 겨울을 날 수 있다. 면역력이란? 세균·바이러스·기생충·이물질 등 우리 몸을 위협하는 것을 방어해주는 강력한 힘을 의미한다. 면역력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 면역과 예방접종 또는 세균·바이러스 등에 의한 노출과 감염에 의해 얻어지는 후천 면역으로 나뉜다. 면역력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형성된다. 여러 물질과 세포들이 함께 면역력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기능이 떨어지게 되면 동시에 면역력도 떨어지게 된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 흡연이나 음주를 자주 하는 경우, 비만인 경우, 과로하는 경우,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노화로 신체 저항력이 떨어지는 경우, 수면 부족이 지속되는 경우, 급격한 온도 변화가 있는 경우 면역력이 저하될 수 있다.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가 되면 몸은 급격한 온도변화를 겪게 된다. 또한 환절기에는 일교차가 커 신체리듬도 급격하게 변할 수밖에 없다. 이때 몸은 온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피부나 근육 등 여러 기관에서 에너지를 과다하게 사용한다. 그러면 면역세포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 양이 줄어들면서 면역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기 쉬워진다. 나아가 날이 춥고 건조해지는 겨울철에는 면역력이 저하될 뿐 아니라 추운 날씨에 유행하는 독감 등 호흡기 바이러스도 활발해져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된다. 이때 심리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면역력 저하는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요즘과 같이 추워지는 계절에는 적절한 체온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인 면역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 면역력 높이는 생활 속 건강 수칙 평상시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단, 충분한 수면 및 휴식 등 생활 속 건강 수칙을 지키는 게 필요하다. 규칙적이고 적당한 운동이나 신체 활동은 면역기능을 향상시키고 질병 발생률을 낮출 수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면역세포인 T세포가 증가하고, 염증을 일으키는 세포 단백질 분비는 감소하며, 백혈구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힘들거나 강도 높은 운동은 오히려 면역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다. 따라서 빠른 걸음으로 걷기 같은 유산소 운동을 일주일에 3∼5회, 1회당 30∼60분 정도로 규칙적이고 꾸준하게 하는 것이 좋다. 흔히 면역력 향상에 좋다는 음식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은 근거가 아직 부족하다. 몸에 좋다고 알려진 특정한 한두 가지의 음식만 섭취하는 것은 건강에 해가 될 수도 있어 권하지 않는다. 때문에 면역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식생활 유지가 중요하다. 면역력을 높이는 음식으로는 당근·버섯·단호박·무처럼 신선한 채소, 불포화지방산이 함유된 고등어 등의 생선,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이 있다. 이러한 음식들을 골고루 섭취하면 몸에 필요한 영양분이 충분히 흡수돼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반면 당분이나 지방이 많은 음식은 면역력을 저하시킬 수 있고, 혈당이나 콜레스테롤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불면증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면역기능도 낮출 수 있다. 때문에 운동이나 취미 생활로 스트레스를 줄이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수면의 양과 질, 즉 수면 시간과 수면 깊이 둘 다 중요하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면역세포 기능이 떨어져 질병에 더 쉽게 노출된다. 따라서 하루 7∼8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는 게 좋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누워 양질의 충분한 수면도 취해야 한다. 혹시라도 불면증이나 다른 수면 문제가 있으면 전문의와 상담 후 멜라토닌 등의 수면제를 단기간 사용해볼 수도 있다. 글 이혜진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자료제공 전원생활)

여행

1930년대로의 시간여행 – 군산이라는 항구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에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 채만식 중 ‘군산, 1930년대로의 시간여행’도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군산의 인상을 결정짓는 데 있어 채만식의 소설 〈탁류〉가 끼친 영향을 무시하기 어렵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군산이라는 항구 전체가 채만식문학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탁류〉는 그의 작품 제목일 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낸 1930년대 군산의 풍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서사(敍事)이기도 하다. 금강 너머 서천 용당에 살던 정 주사는 식솔들을 거느리고 이곳 군산으로 흘러들어와 미두(米豆, 현물 없이 쌀의 시세로 거래하는 투기)에 손을 댔다가 재산을 다 날리고 ‘하바꾼(밑천 없이 투기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의 딸 초봉 역시 가세가 기울면서 여러 사람에게 유린되다가 사생아를 낳고 끝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1930년대 군산항은 식민지 수탈의 결과인 미곡 유출항(流出港)으로부터 일본의 공산품 소비지로 변모하는 중이었다. 그에 따라 군산항은 거꾸로 자본재적 상품의 유입항(流入港) 구실을 했고, 군산지역은 호남의 금융 중심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당시로는 군산이 전국에서 가장 잘 발달된 철도와 도로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만큼 활기가 넘쳐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그 활기는 겉으로일 뿐 식민시대의 인간 군상들은 뿌리를 잃은 채 떠돌다가 몰락과 파멸의 길을 가기 일쑤였고, 그조차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누구는 ‘군산은 1930년대에 성장했고, 바로 그 시기에 성장을 멈춘, 마치 화석과도 같은 도시’라고 말한다. 바야흐로 서해안시대가 열리고, 새만금 개발을 전초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를 표방하는 군산이지만, 과연 낡은 유산과 역사의 상처마저 다 떨쳐버렸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가 흐르는 근대역사문화거리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너머로 장미공연장, 장미갤러리, 미즈카페, 근대미술관 등이 모여 있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한때 ‘플레이보이’ ‘영타운’ 나이트클럽, 록카페 ‘뉴욕 뉴욕’ 등의 간판이 함께 붙어있었다. 불 꺼진 카바레 간판만 나붙어 있던 건물은 이제 말끔히 단장하고 위풍당당하던 옛 모습을 되찾았다. 수탈의 첨병이었던 본 모습은 슬그머니 뒤로한 채. 이름이 ‘현대듸젤’이던가. 눈발이 흩날리는 째보선창의 한 선박수리점 작업장에 생선이 걸려 있다. 고장 난 선박은 이곳에서 치유 받고 바다로 나가 생선을 거두어 돌아온다. ‘군산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은 군산내항 입구의 근대역사문화거리에서 시작한다. 그 기점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다. 군산의 근대역사와 해양문화를 테마로 한 박물관으로, 1층은 해양물류역사관과 어린이체험관이, 2층은 특별전시관이, 3층은 기획전시실과 근대생활관이 마련되어 있다. 근대생활관은 일제의 강압적 통제에도 굴하지 않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군산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다. 박물관 주변에는 우리나라 3대 근대건축물로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건물인 옛 군산세관을 비롯해, 미곡창고 등 옛 건물들을 개조한 군산근대미술관과 장미공연장, 장미갤러리, 미즈카페 등이 있어 근대문화의 숨결 속에서 역사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박물관 뒤편의 철길은 1912년 건설된 익산과군산을 잇는 철도의 마지막 지점이다. 그렇지만 근대역사문화거리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탁류〉길’이다. 개항100주년기념광장 바로 옆에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현 군산근대건축관)이 퇴역한 쇼군(將軍)처럼 서 있고, 맞은편엔 미두장이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미두거리는 군산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이 일대는 군산에서도 일제강점기의 풍경이 비교적 많이 간직되어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1922년에 지어진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소설에서 주인공 초봉의 남편인 고태수가 근무했던 은행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경제수탈의 대표적인 금융기관으로, 해방 이후에는 한국은행과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었고, 일반으로 불하된 이후에는 유흥주점이 들어서는 등 여러 곡절을 거쳤다. 한동안 화재 등으로 방치되다가 군산시가 건물을 매입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미두장이 있던 자리에는 한국선박중개소 군산지점이 들어서 있다. 그 앞으로 이곳이 미두장이었음을 알리는 자그만 표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쌀의 시세를 팔고사던 자리에 선박을 사고파는 곳이 들어선 것은 조금 아이러니하다. 이 일대를 해방 이후 ‘장미동(藏米洞)’이라 부른 것도 미두장과 무관치 않다. 장미동에는 80년대까지 커다란 벽돌창고가 남아 있었는데, 일본으로 쌀을 실어 나르기 위한 창고였다. 도시 전체가 오픈 세트장 소설의 또 다른 무대인 째보선창으로 가기 위해서는 진포해양공원을 지나야 한다. 군산내항에 위치한 진포해양공원은 세계 최초의 함포 해전인 진포대첩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내항에는 일제 때부터 사용하던 부잔교가 남아 있다. 일본은 군산항을 개항하면서 접안시설을 설치하려 했으나 서해의 조수간만 차가 커서 실패를 거듭하자 부두와 배 사이를 연결하는 부잔교를 만들었다. ‘뜬다리’라고도 불리는 부잔교는 물이 들어오면 수위가 높아지면서 다리가 떠오르고, 물이 빠지면서 다리가 다시 가라앉는 구조이다. 한때 군산 최고의 어판장이었던 째보선창은 정 주사가 강 건너 서천 땅에서 가족과 함께 똑딱선을 타고 처음 군산에 발을 디딘 곳이다. ‘째보’는 언청이의 사투리로, 옛날 ‘째보’라 불리던 객주가 이 포구의 상권을 장악하자 그때부터 ‘째보선창’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과, 강물 줄기가 옆으로 째진 모양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군산과 장항을 헤엄쳐 오갔다는 째보의 전설도 사라진 지금, 째보선창은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낡은 선박수리점 몇 곳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한때는 이곳 젊은이들이 곧잘 부잔교에 올라 구경꾼들에게 멋진 손인사를 보낸 후 한껏 폼을 잡으며 바닷물로 다이빙하기도 했다는데…. 그 정도의 낭만과 활기마저 잃어버린 낡은 부두는 이제 숨쉬기조차 버거운 듯 그저 탁류 속에 시름없이 누워 있을 뿐이다. 군산에는 멀리 일제강점기부터 가까이는 1970~80년대 이전까지의 풍경을 간직한 건물과 골목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특히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촬영지로 인기가 많다. 〈8월의 크리스마스〉 〈타짜〉 〈변호인〉 등 많은 영화를 군산에서 촬영했다. 말하자면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오픈 세트장인 셈이다. 근대건축물이 많은 근대역사문화거리나 신흥동 일본식 가옥, 경암동 철길마을, 해망굴, 군산내항과 고군산군도의 섬 등은 여러 영화에 등장하고, 반대로 촬영을 위해 만든 세트장이 영화의 히트와 함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로 약 100여 편의 영화가 군산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자가 사랑할 때〉를 촬영한 중국음식점 빈해원이나 〈소중한 날의 꿈〉의 경암동 철길마을, 〈소년,천국에 가다〉의 해망동 일대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이나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스토리 또한 영화에 못지않다.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군산 이곳저곳을 거니는 것은 또 다른 ‘시간 속으로의 여행’이다. 글 유성문 여행작가

인터뷰

평생 현역 꿈꾸며 오늘도 새롭게 “도전!”

지나간 것, 높은 곳만 바라보면 본인만 상처받고 힘들어요. 마음을 비우고 현실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 행복과 건강의 비결 아닐까요? ‘개그계의 대부’ 임하룡(68). 그의 명함은 여러 가지다. 본업인 개그는 기본이고,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뮤지컬 배우로도 이름을 올렸다. 최근에는 TV와 웹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활약 중이고, 바를 운영하며 무대에 다양한 가수들의 소규모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요즘 공들이고 있는 직업은 ‘화가’다. 2018년에 처음 붓을 들기 시작해 개인전을 2차례나 열면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해온 일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개그맨은 아이디어를 짜고 사물을 비틀어 보는 것이 일인데, 그림을 그릴 때도 이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직접 패션 코디를 했던 것도 배색에 도움이 되고요. 그동안 했던 직업들이 밑거름이 되고 있어요.” 임하룡에게 그림은 곧 마음의 치유였다. 올 초에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님을 몇 년간 간호하며 그의 마음을 위로해준 것이 그림이었다. “어머니가 병원에 계실 때 방송 활동을 6개월간 하지 못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림은 혼자 아이디어를 짜고 백지에서 기획을 하니까 그게 참 좋더라고요.” 코미디언에서 배우로, 다시 화가로 그렇게 어릴 적 꿈이었던 화가에 도전한 임하룡. 그런데 그의 그림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한결같이 ‘눈동자’가 등장한다는 것. 눈동자는 사물과 교감하는 장치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느 날 길을 걷는데 나무가 얼핏 나를 쳐다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뭇가지 사이로 눈동자 같은 것이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무뿌리와 나뭇잎에도 눈동자를 한두 개 그려 넣었는데, 희로애락이 표현되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았어요. 연예인은 늘 남의 시선을 받고 살기 마련인데, 시선이라는 게 참 신기해요. 너무 많이 받으면 부담스럽지만, 또 너무 없으면 속상하기도 하단 말이야.” 그는 오는 1월 23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갤러리 ‘피카프로젝트’에서 팝 아티스트 한상윤과 함께 ‘임하룡과 한상윤의 그림 파티’라는 제목의 미술 전시회를 연다. 걸그룹 ‘카라’ 출신의 박규리가 전시 기획을 맡아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박)규리가 워낙 열심히 한다. 누군가와 같이 전시를 한다는 게 비교될 수도 있어서 부담이 됐는데, 규리가 그림이 좋으니 걱정 마시라며 용기를 주더라”라고 말했다. 함께 전시하는 한상윤은 부와 복을 상징하는 ‘행복한 돼지’를 소재로 밝고 화사한 색채로 그리는 작가다. 임하룡은 눈동자에 머물지 않고 아라비아 숫자로 다양한 직업군을 표현하는 등 다양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내년에는 한글을 형상화한 그림들로 ‘한글전’을 열고 싶은 소망도 있다. “그림을 통해서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어요. 한글이 그림으로 형상화됐을 때도 참 멋지거든요. 외국에 미술로 한글을 알린다면 참 좋지 않겠어요?” 개그맨답게 그림 제목 하나에도 해학이 넘쳐나 빙긋이 미소를 짓게 된다. 그는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작품성도 좋아하지만, 그들이 행복을 느끼면 좋은 일”이라면서 “미술 작품으로 해학의 미와 긍정의 힘을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일주일에 3~4일은 작업실에 틀어 박혀 있지만, 주로 공원 산책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한다. 운전을 따로 하지 않는 그는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면서 생활 속에서 건강을 다진다. 친소 떠나 선후배 경조사 일일이 챙겨 임하룡의 부친은 농협 출신이다. 그는 “아버님이 단양농협 상무와 제천농협 전무를 지내셨다”면서 “이럴 적 고향에서 임 상무 아들로 불렸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재테크 점수는 50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강남 건물주’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상황은 다르다고 손사래를 친다. “원래 재테크는 저축상을 받을 정도로 저축 중심으로 해왔어요. 그러다가 아내에게 카페를 차려주려고 단독주택을 매입해 건물을 올리기는 했지만, 아직 갚을 대출금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일의 끈을 놓지 않게 되었네요. 아마 부를 많이 축적했으면 일을 놓아버렸을 것 같아요(웃음).” 임하룡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맥’이다. 현재 배우로 활동하며 가업을 잇고 있는 아들의 결혼식에 2,000명이 넘는 하객이 왔다는 사실은 연예계에서도 유명한 일화다. 그는 친소 여부를 떠나 선후배의 경조사를 일일이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 가면 나중에 꼭 미안한 일이 생기더라고요. 귀찮더라도 마음이 편한 것이 나은 것 같아서 경조사 자리에는 빠지지 않는 편이에요. 가면 선후배들이 많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어울릴수도 있고, 동창회 가는 기분으로 가요. 대신 봉투가 좀 얇지만요(웃음).” 임하룡 인맥 관리의 제1원칙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뭘 해달라거나 어딜 와달라거나 하는 부탁을 하지 않는 편이에요. 꼭 필요한 경우 정보만 주고 선택하게 해요. 호칭도 ‘선생님’보다는 형동생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죠.” 그러다 보니 그의 주변에는 늘 진로 상담을 하는 후배 개그맨이 많은 편이다. 특히 ‘개그콘서트’가 폐지되면서 젊은 개그맨들의 고민이 더 늘었다. “후배들이 요즘 섭외가 잘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사실 규모가 작더라도 코미디가 한 프로그램씩은 있어야 하는데, 방송 코미디에서 콩트 장르가 사라진 것이 안타깝고 섭섭하죠. 하지만 저는 개그가 사라진다고 보지는 않아요. 장르란 유행처럼 왔다가는 것이니까요. 한창 유행하던 시트콤이란 장르도 저물고 요즘은 예능이 활성화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없는 콩트만 마냥 기다리며 허송세월하지 말고 노래든 뮤지컬이든 유튜브든 부업이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열심히 하면서 기회를 모색하라고 이야기하죠.” 지금 가진 것에 집중할 것 이런 ‘뼈 있는’ 조언에는 그의 경험이 녹아 있다. 그 역시 40년 넘게 영화, 드라마, 뮤지컬 장르의 문을 두드렸다. 〈이웃사람〉 〈범죄의 재구성〉 〈웰컴 투 동막골〉 등의 영화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그는 지난해에도 MBC 드라마 〈365 : 운명을 거스르는 1년〉, SBS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를 비롯해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KBS 예능프로그램 〈트롯 전국체전〉 등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 결실로 지난해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쑥스럽지만 훈장은 40년간 희극배우로 다양한 도전을 한 것에 대한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저라고 왜 좌절이 없었겠어요. 특히 지난해 〈풀몬티〉 이후 17년 만에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 도전하면서 노래에 대한 부담감이 굉장히 컸죠.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하고 싶어요.” 임하룡이 하루하루를 활력 있게 살아가는 내면 관리법은 ‘마음을 비우고, 없는 것보다는 현재 가진 것에 집중하기’다. 그는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겸손하고 건강하게 살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저도 예전에 야간업소에서 DJ를 하면서 억지로 사람들을 웃기던 것이 힘들던 시절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감사해요. 지나간 것, 높은 곳만 바라보면 본인만 상처받고 힘들어요. 마음을 비우고 현실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 행복과 건강의 비결 아닐까요?” 글 이은주 서울신문 기자(erin@seoul.co.kr)사진 최지혜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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