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930년대로의 시간여행 – 군산이라는 항구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에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 채만식 중
‘군산, 1930년대로의 시간여행’도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군산의 인상을 결정짓는 데 있어 채만식의 소설 〈탁류〉가 끼친 영향을 무시하기 어렵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군산이라는 항구 전체가 채만식문학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탁류〉는 그의 작품 제목일 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낸 1930년대 군산의 풍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서사(敍事)이기도 하다.
금강 너머 서천 용당에 살던 정 주사는 식솔들을 거느리고 이곳 군산으로 흘러들어와 미두(米豆, 현물 없이 쌀의 시세로 거래하는 투기)에 손을 댔다가 재산을 다 날리고 ‘하바꾼(밑천 없이 투기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의 딸 초봉 역시 가세가 기울면서 여러 사람에게 유린되다가 사생아를 낳고 끝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1930년대 군산항은 식민지 수탈의 결과인 미곡 유출항(流出港)으로부터 일본의 공산품 소비지로 변모하는 중이었다. 그에 따라 군산항은 거꾸로 자본재적 상품의 유입항(流入港) 구실을 했고, 군산지역은 호남의 금융 중심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당시로는 군산이 전국에서 가장 잘 발달된 철도와 도로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만큼 활기가 넘쳐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그 활기는 겉으로일 뿐 식민시대의 인간 군상들은 뿌리를 잃은 채 떠돌다가 몰락과 파멸의 길을 가기 일쑤였고, 그조차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누구는 ‘군산은 1930년대에 성장했고, 바로 그 시기에 성장을 멈춘, 마치 화석과도 같은 도시’라고 말한다. 바야흐로 서해안시대가 열리고, 새만금 개발을 전초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를 표방하는 군산이지만, 과연 낡은 유산과 역사의 상처마저 다 떨쳐버렸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가 흐르는 근대역사문화거리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너머로 장미공연장, 장미갤러리, 미즈카페, 근대미술관 등이 모여 있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한때 ‘플레이보이’ ‘영타운’ 나이트클럽, 록카페 ‘뉴욕 뉴욕’ 등의 간판이 함께 붙어있었다. 불 꺼진 카바레 간판만 나붙어 있던 건물은 이제 말끔히 단장하고 위풍당당하던 옛 모습을 되찾았다. 수탈의 첨병이었던 본 모습은 슬그머니 뒤로한 채.
이름이 ‘현대듸젤’이던가. 눈발이 흩날리는 째보선창의 한 선박수리점 작업장에 생선이 걸려 있다. 고장 난 선박은 이곳에서 치유 받고 바다로 나가 생선을 거두어 돌아온다.
‘군산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은 군산내항 입구의 근대역사문화거리에서 시작한다. 그 기점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다. 군산의 근대역사와 해양문화를 테마로 한 박물관으로, 1층은 해양물류역사관과 어린이체험관이, 2층은 특별전시관이, 3층은 기획전시실과 근대생활관이 마련되어 있다. 근대생활관은 일제의 강압적 통제에도 굴하지 않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군산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다.
박물관 주변에는 우리나라 3대 근대건축물로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건물인 옛 군산세관을 비롯해, 미곡창고 등 옛 건물들을 개조한 군산근대미술관과 장미공연장, 장미갤러리, 미즈카페 등이 있어 근대문화의 숨결 속에서 역사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박물관 뒤편의 철길은 1912년 건설된 익산과군산을 잇는 철도의 마지막 지점이다.
그렇지만 근대역사문화거리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탁류〉길’이다. 개항100주년기념광장 바로 옆에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현 군산근대건축관)이 퇴역한 쇼군(將軍)처럼 서 있고, 맞은편엔 미두장이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미두거리는 군산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이 일대는 군산에서도 일제강점기의 풍경이 비교적 많이 간직되어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1922년에 지어진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소설에서 주인공 초봉의 남편인 고태수가 근무했던 은행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경제수탈의 대표적인 금융기관으로, 해방 이후에는 한국은행과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었고, 일반으로 불하된 이후에는 유흥주점이 들어서는 등 여러 곡절을 거쳤다. 한동안 화재 등으로 방치되다가 군산시가 건물을 매입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미두장이 있던 자리에는 한국선박중개소 군산지점이 들어서 있다. 그 앞으로 이곳이 미두장이었음을 알리는 자그만 표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쌀의 시세를 팔고사던 자리에 선박을 사고파는 곳이 들어선 것은 조금 아이러니하다. 이 일대를 해방 이후 ‘장미동(藏米洞)’이라 부른 것도 미두장과 무관치 않다. 장미동에는 80년대까지 커다란 벽돌창고가 남아 있었는데, 일본으로 쌀을 실어 나르기 위한 창고였다.
도시 전체가 오픈 세트장
소설의 또 다른 무대인 째보선창으로 가기 위해서는 진포해양공원을 지나야 한다. 군산내항에 위치한 진포해양공원은 세계 최초의 함포 해전인 진포대첩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내항에는 일제 때부터 사용하던 부잔교가 남아 있다. 일본은 군산항을 개항하면서 접안시설을 설치하려 했으나 서해의 조수간만 차가 커서 실패를 거듭하자 부두와 배 사이를 연결하는 부잔교를 만들었다. ‘뜬다리’라고도 불리는 부잔교는 물이 들어오면 수위가 높아지면서 다리가 떠오르고, 물이 빠지면서 다리가 다시 가라앉는 구조이다.
한때 군산 최고의 어판장이었던 째보선창은 정 주사가 강 건너 서천 땅에서 가족과 함께 똑딱선을 타고 처음 군산에 발을 디딘 곳이다. ‘째보’는 언청이의 사투리로, 옛날 ‘째보’라 불리던 객주가 이 포구의 상권을 장악하자 그때부터 ‘째보선창’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과, 강물 줄기가 옆으로 째진 모양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군산과 장항을 헤엄쳐 오갔다는 째보의 전설도 사라진 지금, 째보선창은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낡은 선박수리점 몇 곳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한때는 이곳 젊은이들이 곧잘 부잔교에 올라 구경꾼들에게 멋진 손인사를 보낸 후 한껏 폼을 잡으며 바닷물로 다이빙하기도 했다는데…. 그 정도의 낭만과 활기마저 잃어버린 낡은 부두는 이제 숨쉬기조차 버거운 듯 그저 탁류 속에 시름없이 누워 있을 뿐이다.
군산에는 멀리 일제강점기부터 가까이는 1970~80년대 이전까지의 풍경을 간직한 건물과 골목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특히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촬영지로 인기가 많다.
〈8월의 크리스마스〉 〈타짜〉 〈변호인〉 등 많은 영화를 군산에서 촬영했다. 말하자면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오픈 세트장인 셈이다. 근대건축물이 많은 근대역사문화거리나 신흥동 일본식 가옥, 경암동 철길마을, 해망굴, 군산내항과 고군산군도의 섬 등은 여러 영화에 등장하고, 반대로 촬영을 위해 만든 세트장이 영화의 히트와 함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로 약 100여 편의 영화가 군산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자가 사랑할 때〉를 촬영한 중국음식점 빈해원이나 〈소중한 날의 꿈〉의 경암동 철길마을, 〈소년,천국에 가다〉의 해망동 일대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이나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스토리 또한 영화에 못지않다.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군산 이곳저곳을 거니는 것은 또 다른 ‘시간 속으로의 여행’이다.
글 유성문 여행작가